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있을까 싶다. 서울 강남은 재건축도 격이 달랐다. 수십조원이 휙휙 날아다니는 돈잔치다 보니 모든게 상상이상이었다. 재건축 시공사선정을 위한 조합원 총회는 그 열기가 대통령이라도 뽑는 줄 알았다. 하긴 집이 재산의 대부분인 한국인들에게 재건축사 선정은 대통령선거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몇몇 조합원 총회를 엿보자. 수주전에 나선 대형건설사들은 미리 양쪽으로 도열해 행사장에 들어서는 조합원들에게 “1번 xxx” “2번****”을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혹 모를 충돌에 대비해 경찰까지 나서서 양측을 막아서는 것은 예사. 이날 투입됐던 한 경찰은 “이런 모습은 정말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9월 강남 재건축 과열의 신호탄이 됐던 반포주공 1단지. 시공사 선정 조합원 총회 장소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조합원은 물론이고 주요 언론사 기자들까지 총동원. 이날 행사에는 국민의례에 이어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했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운명한 선배님들을 위한 묵념’까지 있었다.

보이지 않는 현장은 더 뜨겁다.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건설사들의 눈물겨운 노력이야 뭐랄 수 없다. 문제는 불법이다. 돈 봉투를 돌렸다느니 하는 향응·접대설이 끊이질 않는다. 고발과 고소가 잇따른다. 이사비 혹은 이주촉진비 명목으로 1억원에 육박하는 돈이 제시되기도 한다. 수백억원대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을 지원하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GS건설, 현대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 업계 거인들이 맞붙은 강남 재개발 전쟁터는 몇 곳은 소송으로 비화됐다. 보다 못한 정부는 입찰제한과 시공권 박탈이라는 제재안을 발표했다. 

가파른 경제성장시대를 겪었던 우리에게 ‘재건축·재개발’이라는 용어는 두가지 이미지를 준다. 하나는 ‘기회’고 또 하나는 ‘탐욕’이다. 한쪽에서는 뜯겨나가는 사람이 있고, 한쪽에서는 부를 거머쥐는 사람이 있다. 왠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어슬렁거릴 것 같은 서늘한 느낌도 있다.

며칠 전 전직 건설인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강남 재건축 이야기가 도마에 올랐다. 그는 “도덕적인 면은 차치하고 저런 제살깎이 경쟁을 해서 과연 누가 살아남을지 모른다”며 나직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가 떠올린 것은 2010년 초반 해외플랜트 산업을 두고 벌어졌던 과잉경쟁이었다. 금융위기 직후 엄청난 돈을 벌었던 건설업계는 2010년 이후 해외플랜트 산업에 ‘올인’했다.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한해 매출액이 50%, 100%씩 뛰던 때다. 건설사 출신 이명박 정부의 의지도 강했다. 하지만 너도나도 해외사업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국내 업체간 과잉경쟁이 시작되면서 가격 후려치기가 시작됐다. 저가 수주를 하더라도 당장 계약을 따내는 것이 중요시됐다. 적자가 뻔히 예상됐지만 공정에 따라 반영되는 회계특징상 당장 드러나지도 않았다. 하루살이인 전문경영인들로서는 4~5년 뒤를 내다볼 이유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업체들의 가격 및 기술경쟁력이 뛰어났다. 일본은 아예 플랜트산업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중국·인도가 빠르게 따라온다고는 했지만 엄연히 우리랑 기술적 격차가 있었다. 그 좋은 기회를 우리끼리 갉아먹다 놓친거다. 지금 돌아봐도 참 아까운 기회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많은 홍보비와 선심성 지원을 푼 만큼 건설사의 수익은 줄어든다. 수익이 줄어든 만큼 품질좋은 제품을 공급하기 힘들다. 품질하락은 결국 업계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청렴수주’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상식수주’는 돼야 하는 이유다. 저성장 시대, 돈파티는 지속될 수 없다. 사회구조가 투명화되고 사회간접자본(SOC)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품질에 대한 요구는 높아질 것이다. 건설업계가 적폐를 스스로 청산할 시간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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