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당특약은 건설하도급 분야 중 공정거래 체감도가 가장 낮다. 61.2점으로 낙제점을 겨우 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불공정거래 빈도가 높다는 얘기다. 부당특약은 계약 당사자만 알고 있어 잘 노출되지 않는다. 또한 방법이 다양한데다 지능적으로 진화하며 수급사업자의 피를 빨아 먹는 특징이 있다. 갑(甲)질 중의 갑질, ‘악마의 갑질’인 셈이다.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지난 2014년 2월부터 부당특약이 금지되고 있지만 처벌규정 미약 등 약한 고리를 뚫고 더욱 대범하고 지능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신문이 취재·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장설명회에서 보란 듯이 부당특약 사항을 안내하고, 이를 계약서에 버젓이 적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실제로 현장설명서를 입수해 분석해 본 결과 공사비 전가 등 부당특약이 수두룩하게 발견되고 있다. 이쯤 되면 부당특약 금지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돼 막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들게 한다.

부당특약 금지제도는 원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수급사업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시키는 부당특약이 만연해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제3조의4는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계약조건을 설정해서는 아니 된다’며 부당특약 유형을 대략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하도급법 시행령 제6조의2는 부당한 특약 유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일부 열거형 규정은 새로운 부당특약 유형을 근절하는데 한계가 있다. 건설공사의 하도급거래 특성상 부당특약은 새로운 형태로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법 제25조는 시정조치를 담고 있다. 즉 부당특약이 적발됐을 경우 특약의 삭제나 수정과 향후 재발방지 등을 명령하고 있다. 하도급법 제25조의 3은 과징금을 규정하고 있는데, 하도급대금의 2배를 초과해서는 안된다고 적고 있다. 3배 징벌적 손해배상에 못미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삭제나 시정만 조치하는 등 처벌규정이 미약해 부당특약 금지제도의 효과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종합건설사들은 종합건설사대로 발주기관의 부당특약을 건설 산업의 적폐라며 청산해야할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당한다고 똑같이, 또는 더욱 악랄하게 보태서 밑으로 내려 보내는 것은 비열한 행동이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수급사업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시키게 되면 건실 시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부당특약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과 처벌 강화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정부는 부당특약 금지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부당특약 설정시 효력을 무효화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힘써야할 것이다. 자고나면 생기는 새로운 유형의 부당특약으로부터 수급사업자의 피해구제를 위해 시행령에 위임된 부당특약 금지 고시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악마의 갑질이 기승을 부리지 못하게 약한 틈새를 촘촘히 꿰매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