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받는 돈은 ‘요만큼’인데 ‘이~만큼’ 쓰라고 한다. 버는 돈은 안중에도 없이 많이 쓰라고만 기업을 닦달하면, 그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 과연 온전 또는 안전할 수 있을까. 거창하게 경제 논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돈벌이가 시원찮은데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있을까. 기업하고 싶은 생각마저 없어질 판인데…

정부가 최근 발표한 ‘건설 산업 일자리 개선대책’에 대해 건설업계는 의아해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현실과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임금 위주의 정책을 내놓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시작과 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니 본말전도(本末顚倒)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책의 모순성을 꼬집어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는 불만도 끊이질 않는다.

건설 산업은 박한 공사비로 유명한 곳이다. 발주처-원도급-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주종관계의 수직구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저가낙찰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런 사정은 하도급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진다. 오죽하면 전문건설업체들 사이에 “공사를 따면 딸수록 손해”라는 얘기가 나올까. 그래도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저가낙찰도 감수하지만, 손해를 마다하고 기껏 공사를 해놓으면 품질과 안전 등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시공사의 몫이다.

건설업계는 요즘 사회간접자본(SOC) 대폭 축소와 전반적인 경기부진 등에 따른 물량감소로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박한 공사비나마 받고도 일을 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여기다가 적정임금만 강조하고 적정공사비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정책이 나오니 업계로서는 그 부담감으로 만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근로자에 대한 적정임금과 일자리는 적정공사비가 전제될 때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얼마 전 여야 국회의원 6명이 공동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적정공사비가 확보되면 건설업에서 매년 5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공공공사 산정시 적정공사비 확보가 안 되면서 건설 산업 내에서 일자리가 대폭 줄어든 지난 10년간의 통계를 근거로 한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적정임금은 도급과정에서 근로자 임금이 삭감되지 않도록 발주자가 책정한 인건비 이상을 건설사가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사비가 담보되지 않으면 건설사가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한다. 공사비가 현실화돼 자금의 선순환을 유도하지 못하면 결국 아래만 쥐어짜일 판이니 건설업계, 특히 전문건설업계는 그저 죽을 맛이다.

정부는 입만 열면 “일자리가 최우선”이라고 되새긴다. 하지만 정작 정책은 일자리를 막는 방향으로 간다. SOC 대폭축소도 그렇고, 적정공사비는 안중에도 없는 일자리 건설업 대책도 그렇다. 건설업계라고 왜 임금을 많이 주고 싶지 않겠나. 정부는 정말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하는 건설업계의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돈도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속성이 있다. 밑에서 위로 흐르는 역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정공사비가 우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사비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임금도, 일자리도, 안전도 모두 다 모래 위의 허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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