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은 그동안의 방식을 반성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소통, 토론, 조직, 상상이
사업 성공의 전제조건들이다
이것이 충분치 못하면 변질될 수 있다

한국의 도시가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쇠락하고 있다. 나날이 인구가 줄고, 도시 내 사업자 수도 감소한다. 도시 내 인프라의 노후화도 심각한 지경에 도달했다. 이처럼 도시의 쇠퇴 지표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다. 나쁜 지표는 숫자로만 존재하진 않는다. 생활 속으로 침투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기초생활 인프라 투자가 더뎌지고, 주거 환경은 열악함을 거듭하고, 낮은 재정자립도 탓에 문제 해결엔 손을 놓고 있다. 도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도시재생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도시를 다시 태어나게 해 문화적, 환경적 활기를 되찾고, 주거 인구가 늘게 하고, 불편함을 최소화할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을 도시재생책은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도시재생을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나섰다. 그 첫 조치로 지난해 7월에 도시재생 산업기획단을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앞으로 5년간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 밝혔다.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 500여 곳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구체적 청사진도 내놓았다. 이로써 도시 정책은 민간을 중심으로 한 재개발, 뉴타운 조성에서 재생사업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게 됐다. 개발 이익을 목표로 삼는 수익 사업이 아니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준비하고 시행하는 공공사업으로 그 성격이 바꼈다. 재개발과 뉴타운 조성의 부작용을 반성하며 준비된 전혀 새로운 과정이다. 처음 해보는 일인 탓에 신중한 행보가 요청된다. 핵심적으로 유의할 일은 무엇인지, 신중함을 기해야 할 급소는 어딘지 살피는 지혜의 발휘가 긴요해졌다.

근대 도시를 우리보다 이른 시간에 건설했던 서양에선 오래 전부터 도시재생을 도시 쇠락의 대응책으로 활용해 왔다. 영국 런던 지역의 킹크로스 재생사업, 코인 스트리트 대안 개발사업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이들 지역도 초기 쇠락 단계에서 재개발과 거대 타운 조성이라는 바람을 비켜가진 못했다. 대자본이 벌일 재개발과 거대 타운 조성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대안으로 내 걸며 저항운동을 폈다. 도시 내 원래의 모습이나 기억을 지우는 대신 그를 되살려 주민도 살고, 도시도 살리자며 제안했다. 그곳에서 오래 살아왔고, 그곳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손을 잡고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자연스레 도시재생사업은 주민이 함께 소통하고 의논하는 사업이 됐다. 그 결과 도시도 재탄생했다 할 정도로 바뀌었고, 주민의 삶과 함께 활기를 찾았다.

런던에서는 함께 소통하고 의논할 장치를 만들어 도시재생이 지속가능케 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 대표적 장치가 임팩트 그룹이다. 현장을 잘 아는 주민, 관료, 전문가, 활동가, 사회적 기업이 참여해 거버넌스(협치) 형태로 임팩트 그룹을 구성했다. 그 장치 내에서 소통과 토론을 펴가자 자연스레 도시재생 과정에서 담론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누가 참여했고, 어떤 발언을 했으며 어떤 논박이 오갔는지가 가장 소중한 담론으로 대접을 받았다. 소통하고 의논하는 임팩트 그룹은 자신이 생산한 담론이 항상 주민의 이득으로 향하도록 도모했다. 도시재생은 당연하게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정책이 돼갔다. 임팩트 그룹 안에서 관료, 전문가, 건설사업자는 주민의 복리를 위한 파트너로 자리 매김됐고,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자임하며 참여했다.   

재생(re-generation)은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반성하고 도시 안에서 벌어질 행복한 삶을 상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 탓에 도시재생 사업 안에서는 지금 현실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새로움을 상상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먼저, 느림을 인내하며 재생을 상상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지 말 일이며 언제든 더 토론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 상상은 필수적이다. 둘째, 재생 사업은 물리적 재생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재생으로까지 상상을 이어가야 한다. 삶의 조건이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사회적 프로젝트로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그럴 권리를 갖고 있음을 늘 상상해 나가야 한다. 권리에 대한 상상은 도시재생 과정에 더 많이 참여케 해 줄 것이며, 이어 참여 개인을 재생케 하는 결과도 만들어 낸다.

도시재생 과정에서의 소통, 토론, 조직 그리고 상상은 재생 사업의 성공 전제 조건들이다. 이 조건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충분치 않게 되면 도시재생은 공공 정책이 아닌 정부 정책이 되거나 건설 기업이 다시 큰 몫을 차지하는 수익 중심 정책이 될 공산이 커진다. 이 사업이 산업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환경을 지속가능케 하는 사업임에 동의한다면 정부든 건설 산업이든 이 과정에서 적정 역할을 찾아나서야 한다. 소통, 토론, 조직, 상상에 참여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를 위한 자원을 제공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새로운 주체로 재탄생토록 스스로 도우면 어떨까.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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