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관리

“장비는 세 대쯤 들어갈 테고, 기능공 노임을 다 빼도 5000만원은 남겠지…”
모 전문건설업체 대표 A씨는 오늘도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찰에 참여한다. 이 정도 가격이면 마진은 얼마 남지 않아도 공사는 따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차하면 원청사에 계약변경을 요청하면 그만 아니던가.

◇사진은 대우건설 직원들이 건설현장의 품질 등을 점검하는 모습.

그는 공사를 수주했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공사는 A씨에게 수익 대신 수천만원의 빚을 안겨 줬다. 막상 시공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토지는 물렁거렸고 거대한 기암괴석이 번번이 공사를 지연시켰다. 공기를 맞추기 위한 돌관공사로 노임은 두배로 껑충 뛰었다. 원청사에 애원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건설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발주 물량은 줄어들었으며 적자를 면하면 다행이라 할 만큼 수익률도 낮아졌다. 이제 정으로 서로의 상황을 봐주기 보단 ‘계약’을 중시하게 됐다. 체결한 계약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업계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실행단가를 계산하거나, 심지어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내역산출업무를 외주로 맡겨버리는 경우가 만연하고 있다.

권중목 건설클레임연구소 소장은 “전문건설업체라 하면 실행단가 산출, 시공능력 파악, 현장상황 파악 능력 등은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일공종을 다루는 ‘전문’업체가 자사의 역량, 또는 실행단가를 모르거나 설계 도면을 읽지 못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권 소장은 “도면을 파악하고 실행단가를 파악할 수 있는 인력풀을 갖추되, 해당 업무는 현장 관리자, 또는 작업반장 등 최소 10년 정도는 현장경험이 있는 사람이 봐야한다”고 조언했다. 모든 공사가 표준단가에 맞게 돌아가지만은 않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며, 자사의 시공 능력과 현장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진짜 공사 가격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향후 기업을 이끌어갈 ‘기술력’도 결국 이들 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공사단가를 맞출 방법을 강구하다보면 결국 자사만의 노하우, 더 나아가 특허나 신기술 등 기술력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의견이다.

권 소장은 “견적 능력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이제는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이렇게 축적된 견적능력과 기술력 등이 결국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기반이 돼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라면 현장 관리자 또는 공사팀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

터널공사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전문건설업체 (주)현이앤씨의 경우 설계부서가 먼저 적산 프로그램을 통해 1차 견적을 내면, 그 다음 모든 현장상황을 꿰뚫고 있는 베테랑, 공사부서의 총책임자가 2차적으로 검토를 한다고 한다. 적산 프로그램만으로는 오차범위가 너무 큰데다가, 현장에는 꼭 변수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유다.

서동현 현이앤씨 대표는 “적자와 흑자는 결국 예상 실행단가와 실제 실행단가와의 오차 범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관리자 덕에 설계단가와 실행단가의 오차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겪은 애로사항을 토대로 시공 노하우나 신기술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량공사 전문업체 브릿지테크놀러지(주)도 기능·기술 관리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브릿지테크놀러지는 교량 상부에 쓰이는 거더 관련 신기술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업체다. 신기술의 미비점·보완점이나 원가를 계산할 때 공사팀으로부터 자문을 구한다고 한다. “일선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실행단가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어떤 방식으로 공사비를 절감할지 아는 것도 결국 공사팀 직원이다”라고 이상우 브릿지테크놀러지 상무는 말했다.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는 “설계 따로 시공 따로 노는 것이 아닌 설계와 시공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갖춘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면을 살펴보고 시장에 나와 있는 기술들을 조합해 최적의 시공을 이끌어 내는 ‘기술 디자인’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편으로 공사의 품질, 안전, 가격경쟁력 등 기능·기술 관리자가 가져다주는 효과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가직무표준역량 등에 공식 명칭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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