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이 불공정 오명을 씻으려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부당한 설계변경·하도대 미지급 등
다양한 갑질이 유발되는 것은
의사결정이 몰래 이뤄지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정보’와 ‘연결성’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화, 사물인터넷, 로봇화 등이 산업의 지형과 차원을 혁신시키기 위해서는 유효한 대량의 정보를 수집, 가공, 분석, 유통, 응용의 과정을 통해 가치가 있도록 활용해야 한다. 정보를 매개로 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얼마나 긴밀하고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산업의 흥망성쇠가 좌우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무수한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전제로 한다. 특정인의 정보 독점력을 배제한다. 시장의 경쟁질서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무수한 정보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살펴볼 수 있고 의사결정에 고려할 수 있고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상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거나 품질이 조악하다는 정보를 얻게 되면 구매 의사를 변경할 것이고 이는 생산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정보가 될 것이다. 물론 독과점도 발생하고 비합리적인 가격 변동과 생산량 변동이 파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효한 정보가 공개되고 참여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지속될 수는 없다. 

건설 산업에도 무수한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축적된다. 하지만 유효한 활용은 상대적으로 미진하다. 수많은 현장에서의 건설 정보가 현장과 기업 단위에 머물러 있다. 입·낙찰, 계약, 설계, 시공, 감리감독, 유지관리 과정에서 축적된 정보들이 일회성 경쟁과 심사의 통과용으로만 생산되고 활용되면서 연계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선의의 정보 축적이 건설제도의 특수성으로 인해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15년 전부터 시행된 실적공사비제도는 현장의 실적 정보에 근거해 단가를 산출한다는 본래 취지가 최저가낙찰 원칙에 의해 오히려 낙찰(수주)가격의 하락, 실적공사비 인하, 품질저하의 악순환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 산업의 정보 축적과 공개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불공정, 부패, 부실의 오명을 척결하기 위해서라도 건설 산업의 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 발주기관의 사업 수행 과정에서의 설계 변경과 사업비 지급 내역에 대한 일정 범위 내에서의 정보 공개는 우월적 지위에 의한 부조리한 행위(소위 갑질)를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 건설 산업의 선진화가 지체되고 있는 것은 제도의 미비라기보다는 신뢰성 구축의 주춧돌을 단단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부당한 처신을 숨기고 싶을 때, 숨길 수 없도록 개방적 여건을 만들어주면 부당한 처신의 동기부여 자체가 소멸된다. 건설 산업이 태생적 기형아이거나 천덕꾸러기는 결코 아니다. 발주기관의 부당한 설계변경이나 사업변경의 요구, 원청업체의 부당한 하도급대금 지급 지연, 하도업체의 부당한 공정 또는 품질 관리 등이 유발될 수 있는 것은 부당한 의사결정이 숨겨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 제5조에는 “모든 국민은 정보의 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동법 제7조 3항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예산집행의 내용과 사업평가 결과 등 행정 감시를 위하여 필요한 정보”는 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또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공기관을 포괄적으로 지정할 수 있다. 요컨대 공공 발주기관이 사업 수행의 전반적인 정보를 공개하도록 국민이 요구하고 살펴봄으로써 건설 산업의 공정성과 투명성과 창의성 문화를 창달해야 한다. 

정보 공개의 긍정적 기대효과는 첫째, 권한과 책임의 소재가 분명해진다. 불필요한 책임이나 오해를 부담할 우려가 해소된다. 발주자의 정보 공개 책임을 통해 건설 생산구조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원천적으로 해소해 나아갈 수 있다. 둘째, 참여자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유도함으로써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편향되고 독단적인 개인의 강력한 의사결정보다는 상호 이견이 있을지라도 다수의 의사결정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논지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다. 정보가 공개돼야 다수가 참여할 수 있고 수익과 비용을 분담할 수 있다. 셋째, 공개된 정보가 사사건건의 규제나 설명을 대신하게 되므로 다양한 의사결정이나 대안을 창출해 낼 수 있다. 건설 산업 관련 규제가 특히 많은 것은 그만큼 정보의 흐름이 차단됐기 때문일 것이다.

정보 공개가 능사가 아닐 수도 있다. 블랙소비자가 있듯 악의적인 정보 활용으로 사적 불만을 사회적 갈등으로 점화시킬 우려도 있다. 그렇지만 다수의 눈이라면 소수의 악동을 감시할 수 있다. 눈 가리고 있으면 악동의 존재조차도 모른다.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건설경제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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