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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칼럼> 안전에는 공짜점심이 없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 승인 2018.02.0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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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축빌라를 구하기 위해 서울시내를 둘러봤다. 부동산공인중개사와 함께 빈집 몇 곳을 둘러봤는데, 가는 곳마다 주차가 골치였다. 대부분 1층은 필로티구조라 건물 기둥을 피해 요리조리 차를 넣고 빼는 게 여간 일이 아니다. 그나마 주차공간이 태부족해 동네 골목 빈구석을 찾아 억지로 차를 주차해야 했다.  부동산중개사도 민망했는지 배시시 웃는다. “도시형생활주택이 허용된 뒤부터는 이래요. 골목이 온통 주차장이 됐어요.”

주차만 불편하면 그냥저냥 견디겠는데 만일 불이라도 나면? 소방차가 쉽게 진입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물 간의 간격이 좁다 보니 옆집에 불이 나면 내 집에 한순간에 옮겨 붙을지 모른다.

도시형생활주택은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됐다. 싼 가격에 많은 주택을 빠르게 짓겠다는 취지였다. 도시형생활주택은 기존 공동주택에 비해 상당한 규제완화 혜택을 봤다. 건물 간 간격을 대폭 좁혔고, 주차장 면적은 줄였다. 진입도로는 짧아졌고, 관리사무소는 두지 않아도 됐다. 조경시설도 필요없고, 비상급수시설, 어린이놀이터 등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완화 분위기 속에 국회가 도입하려 한 가연성 외장재 규제는 반쪽 입법됐다. 불에 잘 타는 드라이비트 공법과 기둥으로만 받치는 필로티 구조의 도시형생활주택이 이 틈에 대거 지어졌다. 도시형생활주택은 공사감리도 느슨하다. 건축주가 감리업체를 선정하도록 해 제대로 부실시공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지난해 포항지진 때 엿가락처럼 휘어진 한 공동주택의 필로티 기둥은 부실시공 의혹을 남겼다.

이런 상태라면 도시형생활주택은 자칫 도심의 안전을 저해하는 시한폭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국회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준공된 도시형생활주택이 1만3993단지에 달한다. 이 중 외벽 마감 재료로 드라이비트 등 화재에 취약한 자재를 사용한 단지는 4205단지로 약 30%나 된다.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는 도시형생활주택 10단지 중 3단지는 화재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곳에 스프링클러가 있을 리도 없고, 방화문이나 비상문이 제대로 갖춰져 있을 가능성도 낮다.

규제는 종종 불필요한 악덕으로 치부된다. 역대 정부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규제완화를 외쳐댔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이라 불렀고, 문재인 정부는 규제혁신이라 부르는 게 다를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규제가 가치를 만들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애써 간과한다.

지난해 항만재개발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와 스웨덴 예테보리 등을 다녀왔다. 개발지구 내 들어서는 건물은 높이는 물론 외벽색까지 제한했다. 도시미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머리를 비쭉 들어내 스카이라인을 망치는 건물도 없었고, 툭 튀는 색깔로 생뚱맞아 보이는 건물도 없었다. 도시 어디에 서든 원근법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가지런하고 질서 있게 건축된 건물들은 도시의 가치를 높였다. 또 첨단단열공법을 이용한 패시브 하우스를 의무적으로 짓게 하고, 여러 소득계층과 인종이 섞여 사는 소셜믹스를 위해 임대주택을 강제해 도시의 효율성과 개방성을 극대화한 것도 인상 깊었다. 그들이라고 건축주와 시공사의 불만이 없지 않았겠느냐마는 이렇게 하는 것이 멀리보면 결국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실제 지역의 부동산가격은 인근 지역을 압도했다. 

안전을 위해서도 부담해야 할 것들이 있다. 돈과 시간이다. 많은 비용을 들이고 늦게 건물이 올라가면 건축주에게 분명 부담이지만, 행여 있을지 모르는 큰 리스크를 제거하는 ‘보험’이라고 생각한다면 달리 보일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안전불감의 결과는 시간을 두고 내 친구, 내 가족, 아니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세상에 싸고 질 좋은 고기는 없다. 마찬가지로 공짜점심도 없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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