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서 ‘집방’의 비인기가 던지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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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한국서 ‘집방’의 비인기가 던지는 교훈
  • 원용진 교수
  • 승인 2018.03.0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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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집방’ 방송프로그램이 성공 못했다
집을 소유, 매매로만 생각하기에
집이 주는 아늑함, 행복을 못 느낀다
이 틀을 깨야 주택정책이 바로 선다”

‘집방’이란 신조어가 방송가를 떠돈다. 먹을 것을 요리하고, 맛집을 찾고, 맛을 음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먹방’이라 통칭하던 것을 떠올리면 집방의 의미도 짐작이 가능해진다.

집을 평범한 사람이 디자인해 짓거나, 집 내부를 고쳐 예쁘게 만들거나, 집을 널리 알려 자랑하는 일 따위를 담는 방송 프로그램을 집방이라 부른다. 먹방이 유명 셰프를 탄생시키고, 맛집을 널리 알리고,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스타 주인을 만들어낼 정도의 인기를 누렸음에 착안해 집을 내세워 만든 프로그램들이다.  

집방을 만들어 인기를 누리고자 하는 의도를 눈 흘겨 쳐다볼 필요는 없다. 현대인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기쁨을 크게 받아들이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먹방에서 보듯이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 올려 자신의 행복감을 널리 알리며 더욱 행복을 배가시키는 일은 다반사다. 집방이 내놓은 내용 또한 일상의 집안에서 얻는 적은 행복감과 관련된 것이니 먹방 만큼이나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의 ‘와타나베의 건물탐방’, 미국의 ‘집 나와라 뚝딱(Fixer Upper)’ 캐나다의 ‘이색적인 이사(Live Here, Buy This)’처럼 긴 시간 인기를 누리는 외제 집방이 그 예상을 뒷받침했다. 특히 일본의 집방 프로그램은 20년 동안 장수를 누린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일상이 닮아가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롱런 집방을 국내서도 노릴 만했다. 

2015, 2016년 집방 프로그램이 텔레비전 화면에 쏟아져 나왔다. 주로 종편방송이 주도하긴 했지만 집방을 하나의 방송 트렌드로 지적할 수 있을 만큼 현저해졌다. ‘이 집 사람들’, ‘내 방의 품격’, ‘렛미홈’,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등등. 기세등등하게 진격하던 집방 프로그램 중 지속되거나 대중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은 것은 드물다. 먹방이 스타를 배출했던 것에 비해 집방 스타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진 못했다. 집방은 먹방의 인기에 기생해 그 이름을 잠깐 남겼을 뿐 제 나름의 인기를 구가하진 못했다. 먹방은 성공했고, 집방은 그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에서는 먹방 만큼이나 집방이 성공했거나 때론 더 긴 생명의 프로그램을 배출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선 그러지 못한 까닭이 있을까. 

현대를 사는 한국인이 집에 관한한 지닌 명확한 고집은 하나다. 집은 장만해야 할 목표이며, 그것을 이뤄야 성공한 삶의 반열에 들어선다. 집과 관련한 키 워드가 언제든 소유, 장만, 매매, 상속, 분양인 것이 소위 집에 대한 신념, 이념을 말해준다. 집 속에서 평온함, 집이 주는 아늑함, 평화로움, 집에서 얻는 행복감, 나의 개성은 그 다음 문제다. 아직까지는 소유와 장만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집이 있거나 혹은 집이 비싸서 행복함을 느끼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텔레비전 시청자 중 집방에 공감을 크게 느낄 인구는 한정돼 있는 셈이다. 집을 스스로 고쳐 짓거나, 자신이 디자인해보는 일 자체를 상상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집 내부에 쏟은 나의 에너지가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질 거라 짐작하는 일도 좀체 해내지 못하고 있다. 

집방의 인기를 걱정해주고, 그 성공 비결을 전할 요량은 아니다. 우리가 지닌 집에 대한 사고 체계가 방송 프로그램의 인기를 정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요소란 점을 강조하고플 따름이다. 주택 건설 정책, 주택 매매 정책을 내놓을 때 반드시 그 정서를 감안해야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 막강한 힘을 인정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인정을 정책담당자, 산업종사자들과 나누고 싶다. 그를 인정하지 않고선 집과 관련한 어떤 일이든 해낼 수가 없다. 집방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를 정확히 파악해내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음에 기인한다. 인정과 인정 공유 다음에 반드시 해낼 일이 있다. 대중이 집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이념은 언제든 교정돼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언제까지나 집이 소유와 장만의 대상이어선 안 된다. 집 하면 매매나 차익 등의 단어와만 연계되진 말 일이다. 집의 편리함, 아늑한, 가족의 행복, 멋진 디자인, 따뜻함, 개성과 연관되는 그런 순간도 맞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집방이 성공하지 못했음은 슬픈 사건이다. 

집방의 비인기는 우리 일상이 비루하다는 징후다. 집을 소유와 장만, 매매로부터 떼 내기. 달리 사고하기. 꼭 필요한 일이다. 그 고집적인 사고를 교정해내야 주택정책도 바로 서고, 성공을 거두고, 새로운 주택 건설 사업도 가능해진다. 비록 지금 집 관념과 이념은 비루하지만 앞으로 집을 새롭게 상상하도록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집방의 비인기가 주는 교훈이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원용진 교수] yongj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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