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재검토 또는 폐지 등이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더불어 잘사는 경제’,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를 국정 목표와 과제로 내세운 정부라면 ‘약자 고통’이라는 부작용이 뻔한 정책이나 제도는 아예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그건 바로 직무유기이자 직권남용이며, 더 나아가 국민을 철저히 무시 또는 능멸하는 태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소귀에 경 읽기’. 민간대금지급시스템(직불시스템)을 놓고 최근 국토교통부가 보인 태도는 이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대한전문건설신문이 철저한 현장취재를 통해 직불시스템의 부작용 등 치명적인 하자를 연이어 지적하고, 관련 업체들이 “생존권 문제”라며 선(先)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선(先) 시행 후 문제점 보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로 확대를 고집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뻔한 부작용을 알고도 일단 해보고 고치자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스스로 자초한단 말인가.

대한전문건설신문은 지난 몇 주간에 걸쳐 직불시스템의 문제점을 철저히 검증했다. 먼저 정부가 도입취지로 내세운 ‘약자보호’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원도급업체와 하도급업체 사이의 갑·을 관계만 재확인 했을 뿐이다. 종합건설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노무비닷컴’을 대상으로 확인해 보니 원도급사가 승인안하면 이체가 안 돼 오히려 지급이 지연되고, 이용수수료는 하도급사가 뒤집어쓰는 등 수혜자 부담 원칙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더 나아가 대금과 임금을 보호한다는 당초 목표를 무색케 하는 치명적 하자도 드러나고 있다. 민간시스템은 물론 공공시스템들도 사용하는 통장인 일명 ‘에스크로 계좌’에 대한 채권자의 압류 및 가압류가 가능한 점이 바로 그것 이다. 원도급사가 대금지급을 해도 채권자가 압류를 걸면 대금지급이 중단돼 직불시스템의 기능은 사실상 의미를 잃게 된다. 이미 피해를 본 하도급업체 사례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직불시스템이 대금보호를 제대로 못해 오히려 ‘체불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하자가 드러난 셈이다.

직불시스템의 취약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원도급사가 대금지급 승인권한을 악용해 부당감액을 유도하는 사례, 하도급업체의 경영정보가 과도하게 원도급업체에 제공돼 대금착취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 등 원도급사 갑질만 더욱 부추길 소지가 많다. 건설 산업에 만연해온 원도급 갑질을 막아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키우는 시대역행적 제도인 셈이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직불시스템을 활용하는 원도급사에게 ‘상호협력평가’ 가산점을 준다며 독려하고 있다. 이유는 하향식 수직 구조 시스템으로 관리하기 편하다는 점 하나뿐이다. 결국 귀찮고 성가신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굴 위한 상호협력인지. ‘더불어 잘살고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가 이 정부의 단순 립서비스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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