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전문건설회사가 가장 많이 작성하는 문서 중 하나는 바로 ‘설계서(공사계약일반조건 제2조 제4호)’일 것입니다. 설계서는 회사가 공사 입찰, 시공 등을 위해 작성한 문서이고, 작성 과정에서 회사 직원의 노동력, 회사의 노하우, 경험 등이 투입된 문서이므로 회사의 자산입니다. 그렇다면 설계서를 제3자가 권한 없이 사용(복제, 반출 등)할 경우 어떠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될까요? 예를 들어 A사가 작성한 설계서를 A사 직원 B가 무단으로 경쟁사 C사에 넘겼다면, A사는 B, C에게 어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절도죄(형법 제329조)입니다. 그러나 우리 형법상 절도는 ‘재물’을 절취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정보’(즉 컴퓨터에 저장된 A사 설계서 파일) 그 자체는 재물이 아니므로 이를 복사하거나 출력하는 것은 절도가 아닙니다. (대법원 2002도745 판결 참조).
저작권법 위반 책임을 묻는 것은 어떨까요?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입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1호). 설계서 중 공사시방서, 물량내역서 등은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사실의 전달에 가까우므로 저작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설계서 중 ‘도면’의 경우에는 창작성이 인정되어 저작물이라고 볼 여지가 있으나, 법원은 ‘기능적 가치가 중요시되고 누가 하더라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도면의 저작물성을 예외적으로만 인정하고 있어 주의를 요합니다.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저작권 침해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B, C에게 묻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A사는 직원인 B에게 업무상 배임죄 및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C사에게는 설계서를 복사, 반출하라고 B를 교사했거나 B의 배임행위의 전 과정에 관여하는 등 적극 가담한 경우에 한해 업무상 배임죄의 공범 및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대법원 2014도17211 판결 참조).
한편 B, C에게 업무상배임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더라도 이는 사후적 수단일 뿐이며, B, C의 설계서 사용행위 자체를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법률상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노하우와 지식이 축적된 중요한 정보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영업비밀’로 관리하고, 회사 임직원들에게 비밀유지서약을 받는 등 평소 철저한 정보보안 전략을 수립,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업비밀의 경우 유출자에게 엄격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유출행위의 금지 및 유출된 자료의 폐기를 청구할 수 있어 강력한 보호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