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쇼로 위기를 돌파한 바넘이
한국건설에 주는 교훈은 크다
건설의 어려움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스스로 잠재된 시장을 상품화하고
매력을 마케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에 본 사실 같지 않은 영화가 필자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필자가 같은 영화를 두 번 본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그만큼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제목은 ‘위대한 쇼맨’이다. 지상 최대의 쇼라는 서커스를 성공시킨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지상 최대 쇼를 성공시킨 미국 P. T 바넘은 실존인물이다. 바넘은 19세기말 사람으로, 영화 배경은 세계 대공황이었던 1929년 전후 미국이 무대다. 경제가 어려워 서민의 생활고가 극에 달했던 시기다. 주인공 바넘은 극빈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꿈은 대규모 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귀족 집에서 잔심부름하는 일자리에서도 쫓겨나 구걸과 빵을 훔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극심한 빈곤과 사회적 경제위기에도 주인공은 돈 벌 궁리를 하던 끝에 이상한 서커스단을 만들어낸다. 서커스단은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로 구성했다. 64cm 난장이와 2m가 넘는 거인, 흑인과 백인, 미녀와 야수, 수염이 얼굴을 덮은 여자를 무대에 올렸다. 뱀과 원숭이, 거대한 코끼리와 사자 등도 등장시켰다. 기상천외 서커스단은 비록 지역 주민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서민층을 대상으로 했다. 등장하는 개별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끌었다. 바넘은 이런 등장인물 개개인이 가진 캐릭터를 마케팅 홍보에 활용했다. 노이즈 마케팅인 셈이다. 개별로는 싫지만 모아놓으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 것인지를 상품화하는 전략을 폈다.

서커스 공연은 큰 관심을 끌었다. 식자와 귀족은 이를 진실도 사실도 아닌 거짓 쇼로 폄하했다. 바넘도 진실이 아닌 쇼라는 사실은 인정했다. 생활고와 불황에 찌든 서민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주고 싶을 뿐이라 당당하게 밝힌다. 서민을 대상으로 한 동네서커스에서 귀족 공연에 도전한다. 서커스를 영국 왕실 무대에까지 올려놓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넘은 스웨덴 출신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을 뉴욕 공연장에 단 2회 출연 조건으로 초빙한다. 귀족으로부터 홀대받았지만 귀족이 즐기는 공연장에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를 올림으로써 단번에 이미지를 바꾸게 된다. 서민층과 귀족층의 무대가 다름을 분명히 인식한 바넘은 서커스 공연과 음악 공연은 끝까지 섞지 않았다. 수요자 맞춤형 공연 원칙을 지켰다.

실존 인물을 포장한 사실 같지 않은 영화였지만 필자는 한국건설이 당면한 현실과 비교해 보고 메시지를 몇 가지로 정리했다. 영화와 건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상품과 각본 혹은 시나리오 구상, 다양한 주체와 불규칙한 배경, 그리고 서비스라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라면 공연은 여운으로 남지만 건설은 실체로 남아 사람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한국건설에 주는 가장 강력한 첫 번째 메시지는 아무리 어려워도 상품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것이다.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눈과 머리, 즉 지식의 힘이 필요하다. 두 번째 메시지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만들어낸 서커스는 독창적인 창조성으로 무장시켰다. 사람의 눈길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이다. 세 번째 메시지는 상품의 완성도 못지않게 마케팅과 홍보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이다. 잘 만들기 못지않게 잘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네 번째 메시지는 다양한 기술에 해당하는 등장인물을 같은 역할이 아닌 각자의 역할을 하도록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다양한 주체에 이어 다양한 무대는 건설이 가진 시간과 공간, 거리와 자연환경에 노출된 기후 등에 맞는 전략이다. 다섯 번째 메시지는 한번 성공이 계속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커스도 끊임없이 변화가 시도된다. 주인공은 서민층과 귀족층이라는 수요자 무대를 분명히 차별화시켰다. 건설도 수요자 그룹 눈높이에 맞춘 상품개발과 변신 전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은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내수 및 해외시장 모두에서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외부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건설 스스로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잠재된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는 외부 요인보다 내부의 자생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다. 시장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잠재된 시장을 어떻게 상품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한 건설시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잠재된 시장을 상품화시켜 준 것은 건설 외부가 주도했다. 한국건설은 도급시장에  익숙해져 있다. 정부정책에만 기댄 백지위임 시대는 끝났고 또 반복되지도 않는다. 상품 구상을 기획해 정부나 수요자에게 동의를 요구하는 시대로 변했다. 백지에 그림을 그려 외부에 내놓아야 할 시대가 됐다. 투자자에게 일방적으로 투자를 요구하기보다 투자 매력을 먼저 부각시켜야 한다. 한 편의 영화에 불과했지만 긴 여운으로 남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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