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갑질이 단순 갑질을 넘어 패악(悖惡)으로 치닫고 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극악무도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나 다름없는 탐욕의 짓거리에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최근 경찰 수사결과 드러난 종합건설업체 대림산업의 하청업체 피 빨아먹기는 임직원부터 현장소장까지 지위고하 구분없이 자행됐다.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빨아먹는 피의 양이 달라질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바로 그 대림산업 출신의 하청업체 대표가 대림산업과 50년 가까이 맺어온 관계를 청산하고 고발하기에 이르렀을까.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종합건설업체가 하는 짓거리가 이 모양이니 하도급 패악의 만연(蔓衍)정도가 대략 가늠이 된다.

하청업체 대표는 대림산업 임원급 인사의 자녀 혼사에 축의금으로 2000만원을 건냈다. ‘대림 사장, 본부장 등 임원급 자녀 혼사에 1억원은 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정도로 예의를 표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대림 직원으로부터 “이제 대림에서 공사 못할거요”라는 말을 들었고 진짜로 공사를 못하게 됐다. 듣는 사람도 울화통이 터질 지경인데 직접 당한 당사자는 어땠을까.

현장소장과 감독관들이 추가공사비에 대한 설계변경을 빌미로 공공연히 돈을 요구하는 것은 하도급 갑질의 고전(古典)이나 다름없다. 그 액수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안주면 다음 공사를 안주고, 평가점수를 나쁘게 줘 입찰을 못하게 하고, 끝내 협력업체 등록을 취소시킨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도 수시로 돈봉투를 줘야지만 공연한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

하청업체 대표는 어느 날 현장소장으로부터 “딸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외제차 좀 알아봐 달라”고 넌지시 하는 말을 들었다. 명령이나 다름없는 말을 무시했다가 당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보복 때문에 마지못해 4600만원 상당의 외제차를 사줄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휴가비 줘라”, “자녀 유학 가는데 여비 좀 줘라”, “유학 경비 좀 줘라” 등등 갖가지 명분으로 돈을 요구한다고 하니 그 동물적 탐욕의 야만성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대림산업의 하청업체 피 빨기는 본사 임원, 현장소장, 감독관, 관련부서 부장·차장·과장 등 수뢰사슬을 형성하며 악랄하게 자행됐다. 돈 전달 방법도 5만원권을 신문지에 싸서 봉투에 담은 뒤 테이프로 둘둘 말아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식으로 전달받았다고 하니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건설현장에서 대형건설사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도급업체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행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적폐로 똬리를 틀고 있다. 어떤 정부든 하도급 불공정 행위 근절을 목 놓아 외치고, 그런 방향으로 법을 손본다고 분주하지만 이를 비웃듯 우월적 범죄행위는 오히려 대범해지기까지 하고 있다. 정부가 이같은 행위에 대해 처벌 강도를 더욱 강화하는 것과 함께 감시의 눈초리를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하청업체도 당하고만 있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문제 제기로 삐뚤어진 건설현장 의식을 바로잡는데 앞장서야할 것이다. 함께 가는 것은 말로만 해서 이뤄지는 게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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