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 70돌 유적지 기행

제주시 4·3평화기념관에선 당시 상황과 아픔 한눈에 보여줘 
수만명 원혼 적힌 위령탑과 섯알오름 집단학살터 등 가면
발길 잠시 멈추고 묵념을… 

봄빛 찬란한 4월, 매년 이맘때면 제주도는 소리 없는 아픔에 젖어든다. 올해 제주4·3사건은 70주년을 맞았다.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제주4·3평화공원은 제주4·3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다. 너른 부지에 4·3평화기념관과 위령탑, 각명비, 위패봉안소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서 있다. 매년 4월3일이면 이곳에서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다.

4·3평화기념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백비(비문 없는 비석)가 소리 없이 우리를 맞았다. 누워 있는 백비 앞에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문구가 적힌 석판이 놓여 있다.

백비를 지나면 오랜 세월 아픔의 시간을 보냈던 제주도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여러 개의 테마로 나뉜 전시관마다 제주4·3이 일어난 배경과 원인, 과정 등이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전시관은 1948년 4월3일부터 한라산 금족령을 해제한 1954년까지 수년에 걸쳐 이어진 제주4·3사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놨다. 전시는 중산간 지역의 마을이 불타 없어지고, 삶터를 잃은 주민들이 엄동설한에 산으로, 동굴로 숨어들어야 했던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전한다.

공원 안은 ‘평화’라는 단어에 걸맞게 무척 고요하고 평온하다. 언덕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위령탑에 닿았다. 맑은 하늘로 쭉 뻗어난 위령탑 둘레를 각명비가 둘러싸고 있다. 각명비에는 마을별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성별, 나이, 사망일시 등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이곳에 적힌 이름만 2만여명이라고 한다. 공원 가장 윗자락에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패봉안실과 행방불명인 표석이 자리한다. 위패봉안실에는 희생자 신위 1만4000여기가 봉안돼 있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추모가 가능하다.

제주 남서쪽에 펼쳐진 알뜨르비행장 끄트머리에는 섯알오름이 있다. 너른 들녘을 드라이브하듯 한참 달려 도착한 섯알오름 학살터. 6·25전쟁 때 예비검속에 체포된 사람들이 집단 처형된 곳이다. 당시 무작위로 잡혀 끌려가던 사람들은 다가올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실려가는 트럭 안에서 고무신 같은 소지품을 길가에 던져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섯알오름 희생자들은 대부분 인근 묘역에 함께 안장됐다.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됐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다.

성산일출봉 일출 명소로 꼽히는 광치기 해변. 이곳에서도 제주4·3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은 과거 물때에 따라 육지와 길이 연결되고 끊어지기를 반복했던 곳이다. 제주4·3 당시에 성산면 주민이 많이 희생됐다고 한다. 광치기 해변을 들른다면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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