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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칼럼> 집값 급등, 그 이후의 풍경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 승인 2018.04.2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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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저 디에치자이개포 청약에 당첨됐습니다”

동문 모임에서 한 동기가 수줍게 말했다.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이 쏟아졌다. “14억원을 구해야 한다”며 그는 짐짓 힘든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속으로는 그가 벌게 될지도 모를 6억원의 로또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40대 중반에 들어선 홑벌이인 그에게 돈 걱정이 마냥 표정관리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이는 자라고, 들어가는 비용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향후 3년 동안 6개월마다 1억5000만원씩 1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마련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중도금 납부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의 속은 바짝바짝 탈 것이다. 

옆자리에 있던 한 선배가 말했다. “연체하면 되잖아. 3회가량 중도금을 내고 나면 건설사가 계약해지할 수 없어.” 중도금 납부 연체이자는 10%가 넘는다. 하지만 기대수익은 6억원이나 된다. 어떤 식으로든 자금을 마련할 길은 열려 있는 셈이다.

지난 몇 해간의 부동산 가격 급등은 잠자고 있던 한국인의 부동산 DNA를 다시 일깨웠다. 집값 1억원이 오른 것은 얘깃거리도 안 된다. 3억~4억원은 올라야 그래도 명함을 꺼낼 수 있을 정도. 어느새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7억원을 넘어섰다. 이번 집값 상승은 2004년~2007년 이후 금세기 들어 부동산으로 돈을 벌 두 번째 기회였다는 애기가 나온다. 

폭등하던 서울 집값이 잠시 주춤한다지만 사석에서의 대화 주제는 여전히 부동산을 벗어나지 못한다. 집값이 얼마나 올랐느니, 어디가 유망하니, 돈 없이 분양받는 팁은 뭐니, 온통 부동산 얘기다. 표정에서 집주인과 세입자가 갈린다. 집을 산 사람의 얼굴에는 괜한 뿌듯함과 여유가 흐르지만 아직 집을 사지 않은 사람은 불안과 초조감이 배여 있다. 그러다 보면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다반사. “집값은 더 올라야 한다”와 “미친 집값”이라는 두 주장이 엇갈리다 몇 번 정도는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많다. 집을 가졌으면 위너, 가지지 못했으면 루저다. 위너와 루저의 기대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집이 갈라놓은 2018년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꺾이지 않은 부동산불패는 돈에 대한 철학도 바꾸고 있다.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갭 투자를 한다. 13억원 강남집을 3억원 주고 샀다거나 5억원짜리 용인집을 1억5000만원에 산 경우도 봤다. 강남집은 한때 16억원까지 올랐고, 용인집은 7억원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를 한단다. 어느 쪽이든 투자대비 기대수익률은 100%가 넘는다. 갭 투자는 몇 해 전만 해도 투기꾼 냄새가 짙다며 꺼렸다. 하지만 지금은 ‘Why not?’이 돼 버렸다. 훗날 고위공직을 꿈꾸는 사람들이나 꺼릴까 교수, 관료, 언론인, 예술가 등 직업군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대에 대한 관념도 바뀐다. 지대가 불로소득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막대한 리스크를 안고 내린 투자결정에 따른 대가니 정당하다는 논리다.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당당히 이런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투자와 투기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판단기준은 있다. 그 행위가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다. 부동산을 사고파는 행위가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면 투자라 불릴 만하다. 그렇지 않다면 투기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어떤 위치일까. 일하는 사람들이 의욕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재화일까, 아니면 근로의욕을 꺾는 재화일까. 프리미어출신 축구선수도, 사춘기 때 우리를 설레게 했던 아이돌도, 최고수준의 쉐프도, 유명 언론인들도 마지막으로 꿈꾸는 직업이 건물주다. 제조업 기업도, 서비스업 기업도 결국은 땅에 투자한다. 뭔가 비정상이다. 부동산은 지난 몇 해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다. 한 번쯤 숨고르기를 할 때도 온 것 같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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