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베를린에서 남북 국토개발을 담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혔다.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북경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공상(空想) 같아 보였지만 이제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남북한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북한의 비핵화가 차질 없이 실행된다면 남한에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특히, 북한이 ‘핵·경제 병진’ 노선 대신에 ‘경제 총력’ 노선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 해빙 분위기로 새삼 주목받는 것은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다. 동쪽에서는 부산-금강산-원산-청진-나선-러시아를 연결해 에너지·자원 벨트를 만들고, 서쪽에서는 목포-수도권-평양-신의주-중국을 연결해 산업·물류·교통 벨트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동서로는 비무장지대에 환경·관광 벨트를 구축함으로써 한반도 전체를 ‘H자’ 모양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 구상은 북한 측의 개발 방향을 반영해 수립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제재가 풀린다면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런 구상들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경제에 가져오는 투자 효과는 상당히 클 것이다. 대·중소 기업들이 직간접으로 대거 참여하게 되고, 북한의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도 활용할 수 있다. 성장 한계 직면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더욱 어려워진 한국 경제에 확실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반도 긴장완화는 당장 남한의 자본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동안 남한은 북한의 존재 자체만으로 위험한 나라로 간주돼 왔다. 전쟁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런 지정학적 리스크는 한국의 채권·주식·실물 투자에 걸림돌이 됐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였는데, 이것을 걷어내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주식을 비롯한 자산 가치도 상승하게 된다.
물론, 아직 지나치게 낙관할 단계는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섣불리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원만히 이뤄진다 하더라도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실행이 착실히 진행된다는 보장도 없다. 경제 제재가 풀린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체제붕괴 불안 때문에 개혁·개방에 소극적일 수도 있다. 북한 시스템의 경직성, 부실한 인프라, 취약한 경제 마인드 등도 걱정 요소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과의 경제협력 활성화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절호의 기회가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유럽 등 다른 나라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바짝 긴장하고 힘을 합쳐 전략적으로 연구하고 검토해야 할 때다. 퍼주기식이 돼서도 안 되고 너무 북한을 이용 대상으로만 삼아서도 안 된다. 남북경협의 기본적인 원칙을 확실히 정하고,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해야 호기(好機)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