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말이 됩니까. 7월 시행이라는데 이렇다 저렇다 하는 기준이 없어요.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건데, 건설사들 다 죽은 뒤에 어찌 됐나 보겠다는 건가요.”

최근 만난 한 대형건설사 직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넋두리부터 쏟아냈다. 7월 시행이라고 했으니 주당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이야기인 줄 알아차렸지만, 무슨 소리인지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국내 현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외 현장은 어쩌란 말이냐”고 한층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해외 현장도 7월부터는 무조건 주당 52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계약서상 공기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예를 들어 모듈로 조립해 온 플랜트 시설물이 현장에 도착하면 즉시 2일, 3일씩 밤을 새가며 조립하고 완공해야 하는데, 일하다 “어 A팀 근로시간 다 썼네, B팀 투입해”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부실시공 우려도 커진다.

수긍이 가는 주장이었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국민이 누가 있겠느냐마는, 업종과 현실에 맞게 좀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생각은 다른가 보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모든’ 사업장의 주당 근로자 근로시간을 현재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다. 시범 시행도 없고, 예외·특례 업종도 없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업장은 두말할 것 없이 건설업이다. 건설사가 운영하는 국내 및 해외 현장이 모두 적용 대상이다. 국내 현장이야 어찌어찌 해보겠지만, 해외 현장은 다르다. 

아니다. 쉽게 생각하면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정부나 이 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이 그랬던 것 같다. 그냥 “공사 기일을 지키려면 근로자를 충원하라”는 식이다.

건설사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추가 투입해야 할 인건비를 최소 30%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 이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공사비를 올리고 분양가를 높이면 되는가.

아무리 대의명분이 좋더라도 절차와 과정이 정당성을 담보해야 한다. 또 그 정당성은 소통과 대화라는 수단에 의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추진된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이 일방통행식으로 결정된 것 같은 감이 적지 않다.

7월까지 아직 시간이 많다. 정부와 국회는 건설업계의 이구동성에 귀 기울어야 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건설업체의 공사비 확보방안 등에 대한 건의문을 보냈다. 해외건설협회도 건설사 의견을 모아 해외현장 근로시간 단축 제외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대한건설협회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화두다. 선진국은 그러나 우리와 달리 일정 기간 유예기간을 두거나 장기간에 걸쳐 근로시간을 줄였다. 2017년 근로시간을 단축한 일본은 건설업의 경우 5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건설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일까. 무조건적인, 예외없는 근로시간 단축 강요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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