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사용에 불편함이 없고
가격은 오르지 않는 마법의 정책을 
새 정부의 장기 수급계획에 기대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엔 보이지 않는다
통일 후 전력수급방안도 불확실하다”

최근 에너지 공기업 임원이 전력에너지 수급과 미래 전략에 관해 발표하는 내용을 접하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오랜 기간 동안 전력에너지 관련 교육과 실무를 경험했기 때문에 국내 전력체계에 대해서 일정 수준의 윤곽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2015년에 발표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내용도 관심 있게 봤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에너지정책 전환을 전면에 내세웠을 때만 해도 마법을 기대했다.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고 요금도 현재보다 낮추거나 최소한 동등한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마법 정책을 기대했다. 우리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독일도 원전 8기를 가동 중단하자 전기료가 21%나 상승했다. 에너지 마법 정책이라 부르는 이유다. 에너지원의 97%를 수입하는 우리 현실에서 에너지 주권 문제도 해결되리라 기대했다. 남북통일 이후 방안도 있으리라 기대했다. 필자의 이런 기대는 근거가 전혀 없다.

국내뿐만 아니라 에너지 수급 문제는 전 세계가 고민하는 문제다. 지구온난화 문제와 맞물려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가 전 세계적으로 부각돼 있다.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발전실험로 건설사업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성공하면 가장 큰 수혜자는 자원 빈국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적극 응원하는 필자다. 가능성을 믿지만 상용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아직 없다. 과학자들이 응원하는 이유는 가능성에 도전하는 게 과학과 기술의 역할이자 책임이라 믿기 때문이다.

정부는 탈원전·탈석유·탈석탄과 재생에너지 극대화 내용을 담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이 필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다. 전력수급계획은 15년 동안 수급에 대한 예측성 계획도 포함된다. 5년을 주기로 갱신한다. 국내 에너지 수급계획이 정책에 따라 변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의 에너지 주권 문제도 걸려 있다. 유럽이나 미국이 국가 간 혹은 주별 전력망 전체가 연결돼 있어 에너지 주권 문제는 관심 밖이다. 에너지 자급이 가능한 국가와는 다른 정책이 필요하다.

일부에서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전력망을 연결하는 이른바 ‘수퍼 그리드’ 구축을 주장하지만 성사시키기 힘들고 에너지 주권과는 거리가 멀다. 사드 사태로 드러났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정치적 변수가 너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는 청정에너지임과 동시에 주권도 우리에게 있다. 환경론자는 국내 신재생에너지의 잠재 생산 여력이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 원가도 매년 줄어들고 있어 발전원별 가격도 전통적인 에너지원과 비교해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논리적 근거보다 추리 혹은 개인의 주관적 추정에 의한 주장일 뿐이다. 지방으로 이전한 어느 에너지 공기업 사옥에 태양, 지열, 풍력 등 활용 가능한 재생에너지 시설을 최대한 동원했다. 신재생에너지가 전체 사용량의 최대 27%까지 차지한다고 한다. 정부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에 10번 이상 공장 전력 사용 중단을 요청했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 마법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 셈이다. 

북한 지역 발전과 전력망 상태, 그리고 남북한 망 연결에 대한 계획은 수립돼 있지만 대외비로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의 종점인 2030년도 사용량과 요금은 에너지 전환 정책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고도 한다. 전력 소비자의 관심은 3가지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고품질의 전력을 낮은 값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다. 전력의 양과 질, 그리고 사용료가 기본이다. 통일이라는 예상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전력수급계획에 담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발표하는 정부는 국민의 의문을 해소시켜 줘야 할 의무가 있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은 과거 7차례 계획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혁신적 내용이 담겨졌다. 무조건 정부 정책을 믿어달라는 시대가 아니다. 한반도 전체 전력 수급에도 관심이 높다. 전력 설비 기준으로 남한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북한에 돌발 변수가 생길 때 전력 수급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모른다. 대외비라는 말로 질문을 피해 간다. 어차피 전력 차이 극복을 위한 비용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비용을 지불할 국민에게 수시로 알려주고 이해도를 높여가는 게 정답이다. 

전력 시장을 독과점으로 묶어 놓은 정책도 재검토해야 한다. 1996년에 발전소 운영, 송·배전, 그리고 건설을 분리하겠다는 정책으로 6개 발전회사로 분산했다.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게 당시 정책의 취지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6개사 모두 건설전담조직을 따로 신설했고 인력도 각자 채워 넣었다. 가장 혁신적이라던 정책이 고비용 구조로 변했다. 정책 변화가 국민의 신뢰성을 얻을 수 없는 이유를 되새겨 본다.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세계가 모르는 마법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가까운 시일 내 밝혀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예측이 잘못됐다는 에너지 주관부처 장관의 명쾌한 질타를 듣고 싶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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