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는 약 20년 전부터 “제 값 주고 제 값 받자”고 외쳐왔다. 공공부문의 건설 비중과 규모가 축소되면서 ‘적정 공사비’의 확보가 더욱 절실해졌다. 건설업계가 계약 금액이나 실행 공사비가 아니라 ‘적정 공사비’로 지칭한 점에서 공사비가 알맞게 산정되지 못했거나 지급되지 못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건설 공사비의 적정 수준은 무엇으로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공정거래의 관점에서 ‘적정함’의 절대적인 수준을 산출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합리적인 요건은 고려할 수 있다. 적정 공사비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공사 대금이 실질 비용을 충당하기에도 부족하거나 이윤이 발생하더라도 기업 활동이 지속가능한 수준에 이를 수 없을 정도라고 주장한다. 

적정 공사비를 일반 상품에 견주면 정상가격(normal value) 또는 공정가격(fair value)과 일치한다. 만일 특정 상품이 정상적이고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되지 않는다면 소비자와 경쟁업체는 물론 생산자 자신에게도 장·단기적 불이익과 불확실성이 되돌아온다. 특히 정상가격 이하의 저가거래일 경우에는 수익성 악화, 유동성 악화, 재투자 위축, 고용과 소득의 감소가 이어진다.

설령 단기적으로는 누군가가 추가이익을 얻게 될지라도 경제는 흐름이고 순환구조이므로 중장기적으로는 모두의 살을 갉아먹는 행위로 귀착된다. 불공정 거래는 부정부패와도 연계될 소지가 크다. 국민경제 전체에 끼치는 불신과 불확실성의 파장을 고려하면 악영향은 지대하고 심각할 수 있다. 

그래서 국제적 거래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불공정 거래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반덤핑관세의 부과이다. 상대 수출업체가 정상가격(공정가격) 이하의 저가로 수출할 경우에 수입국은 국내 동종 산업의 피해를 보호하기 위해 고율의 반덤핑관세를 추가적으로 부과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올 4월말 현재 한국산 철강, 섬유, 화학, 세탁기 등 23개 상품에 높은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조사 대상 건수를 포함하면 대상 상품 수는 30건이 넘는다.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국제적 보복조치이다. 수출 기업이 오죽하면 밑지는 장사를 하겠느냐, 가격이 저렴하면 수입국 소비자의 이익이 증대되는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소용없다.

그런데 우리 건설 산업에서는 만일 공공입찰 참가 기업이 이전 실행가격(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 보복조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수주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저가 중심 입찰제도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저가심의제를 통한 덤핑행위 걸러내기 장치를 고려해도 공정거래의 측면에서는 뭔가 이상하다. 입찰 시 ‘정상적인’ 예산 규모가 안정장치로 책정돼 있어서 공사비 과다 지출의 우려가 없다. 중소 규모 공사에는 예정가격을 직접적인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고 있어 매우 ‘정상적인’ 공사비 지출을 이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공사에서는 공사비를 낮출수록 애국지수가 높아진다는 막연한 터부(taboo)가 관행처럼 전수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검토, 조달청의 총사업비 검토, 발주기관의 자체 조정과 검토 등의 단계를 통해 적정 공사비를 덤핑가격으로 낮추려는 요인이 스며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암묵적인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가 요인이 예산변경으로 반영되지 못할 경우에는 낙찰 및 계약 금액으로는 아니더라도 최종 공사비 기준으로는 덤핑가격에 의한 공사로 평가될 수 있다. 정부가 덤핑행위를 방지하고 규제해 공정가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오히려 덤핑행위를 조장할 수도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공정거래 질서 유지는 독과점이나 담합에 의한 기업의 초과이익 획득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 저가의 ‘적정하지 못한’ 공사비 지불 구조에 대해서도 규제를 해야 한다.

덤핑가격은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이다. 생산자 스스로가 이윤을 줄여 판매가격을 낮추더라도 정상가격 이하이면 불공정 행위로 규제를 받는다. 그런데 건설 생산자에게는 정상가격 이하의 공사비를 유도하는 입찰구조와 발주기관의 관행이 있다. 건설 산업에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구조가 있지만 관련 법 제도와 운영방식에 퇴행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적정 공사비를 외치는 건설업계의 함성이 엄살이라면 목이 잠겨서 각성하도록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시설물 품질과 공사 내용의 구성에 비해 저가의 공사비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와 관행이 있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덤핑행위를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건설 산업의 혁신은 ‘적정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명지대학교 교수·건설경제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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