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무드로 건설특수 기대는 크지만
남북이 어떤 색깔의 건축을 만들지
업계가 상상력을 동원한 적이 없다
서로의 기술력·노동력·자재가 만나
엮어낼 새로운 건축물을 보고싶다”

어처구니없는 배경으로 밝혀졌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통일대박’은 건설업계를 설레게 했다. 좀체 불황을 벗어나지 못하던 건설계로선 희망의 빛을 찾은 듯 들떴었다. 건설 대박이 곧 터질 듯 부풀었었다. 시계 바늘을 조금만 앞으로 돌렸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정상회담은 건설주의 주가를 올려놓았다. 이어 구체적인 수주액을 입에 올리는 등 한바탕 들뜬 말잔치가 벌어졌었다. 

올해 4월 판문점 선언 이후 건설업계엔 다시 봉긋이 새바람이 분다. 배신당했던 기대를 떠올리면 조심스러울 만도 하건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큰 기대를 걸고 그 동안의 부진을 한 방에 만회하리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이렇듯 통일, 남북대화 사건 때마다 건설계는 비슷한 반응 패턴을 보여 왔다. 1) 일단 열렬히 환영하면서 주판을 두드린다. 2) 주판을 두드린 결과 도로, 철도, 항만, 주택 건설경기가 진작되리라 기대를 확신한다. 3) 그러나 너무 성급히 이를 대했다간 체할 수도 있으니 사전 사례인 독일의 경험을 살핀다. 4)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니 건설계 내에 회의체 혹은 싱크탱크 하나쯤 만들어 두자고 이심전심으로 결의한다. 

이같은 패턴은 통일대박 사건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 방북 때도, 판문점 선언 때도 한 치의 오차 없이 펼쳐졌다. 건설관련 미디어엔 그런 글들이 넘쳤다. 이 패턴, 기대로부터는 몇 가지 특성을 읽어낼 수 있다. 통일이나 남북대화가 건설계를 위한 존재인 양 말한다. 그래서 건설계는 늘 통일, 남북대화의 끄트머리에 등장한다. 통일을 위해, 남북대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없는 곳인 양 무심하다. 과실을 줍겠다는 의지는 넘치지만 그를 키우고 돌보는 데 어떤 기여를 하겠다는 말은 없다. 수주의 파이팅은 넘치지만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통일, 남북대화에는 수동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상상력이 뒤따르지 않는 건설이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물이 제 각각인 것은 상상력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제각각으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멋지게 발휘된 상상력의 건축물이 있고 턱없이 모자라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그래서 건설을 하는 측에서는 멋진 상상력을 내놓고 클라이언트가 그를 따라주고 그리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으로 남기를 욕망한다. 남북이 건설, 건축으로 만나 도대체 어떤 색깔, 어떤 형상의 건축물을 만들어 낼까를 고민해낸 흔적을 찾기 힘들다. 통일, 남북대화 사건이 올 때마다 혹은 그 이전에도 늘 그런 상상력이 동원되고 떠들면 좋으련만 그를 본 기억이 없다. 건축계의 상상력 부재가 늘 아쉽다.  

한국의 주거 방식을 놓고 획일적이라고 말하지만 한국인의 일상에 맞춘 최적의 건축 형태로 옮겨가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지금의 아파트 설계나 공법이 일상에 대한 주목으로부터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일상 생활을 배려한 주거 건축이고 그래서 지금은 동의되고 있으며 큰 불만도 없다. 문화, 전통, 일상을 고려하지 않으면 건설, 건축이 지속될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북쪽에 진출해 큰 수익을 올리겠다지만 건설계는 그들의 일상, 문화, 전통에 충분히 익숙해 있는 것일까. 지난 몇 개월 동안 남북 관련 건설, 건축 기사가 넘쳤지만 그런 내용을 대한 적은 없다. 이를 지식과 공감의 부재로 불러도 무방하겠다.  

통일, 평화, 남북대화 등에 수동적이거나 상상력과 지식, 공감의 부재가 두드러져 보였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건설계가 사회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통일, 남북화해, 평화 담론을 만드는 데 주저 말길 요청한다. 건설계가 통일, 평화, 남북대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적극성을 띠고, 의미 담긴 건축 건설이 평화를 더 빨리 더 많이 재촉할 것이라 상상하며, 상대방의 삶을 연구하며 말들을 퍼트림을 주저하지 말길 바란다. 순수 남북한의 기술력과 자재만으로 100년에 걸쳐 무결점의 쌍둥이 건물을 남북한 각각에 짓겠다는 그런 뉴스도 한 번쯤 보고 듣고 싶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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