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건설업체의 잔꾀는 끝이 없다. 하도급업체를 공정히 대하라는 사회적 합의와 법규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잔재주를 시험해 보는 놀이터다. “하도급업체를 괴롭히고 뜯어먹을 장애물을 어떻게 쳐놓아도 우린 뚫고 나간다”는 생각만 한다. “아무리 그물이 촘촘해도 우리를 가둘 수는 없다”라며 국토교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하도급정책 당국을 비웃는다.

이런 원도급 종합업체들이 이번에는 입찰계약서용 하도급관리계획서와 실제 계약서를 따로 만들어 하도급업체를 쥐어짜온 게 걸렸다. 지난해 지방의 공공공사에 참여했던 A, B 두 전문건설업체가 대표적 사례다. 이 두 회사는 원도급업체에게서 발주처에 제출할 하도급관리계획서에 기재한 하도급 비율보다 낮은 비율로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강요받았다. 원도급업체들은 설계변경과 추가공사 등을 통해 그 차이를 보상해주겠다고 했으나, 알다시피 이런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A, B 두 업체는 지금 도산 위기에 몰렸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50억원 이상 적격심사 대상 공사는 하도급관리계획의 적정성 여부를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종합업체들은 적정성 평가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서는 공사 전체 하도급 비율은 40% 이상, 공종별 하도급률은 82% 이상, 직불은 30% 이상 이행하겠다는 계획서를 발주기관에 제출하고 이를 이행해야 한다. A, B 두 전문업체의 원도급사들의 행태는 하도급 적정성 평가라는 제도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A, B 두 회사의 기막힌 사연이 대한전문건설신문에 보도되자 유사한 피해를 당했다는 전문업체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전문업체들이 알려온 종합업체의 수법을 보면 사기나 다름없다. 하도급관리계획 적정성 평가 만점을 위해 평가항목에 포함된 시공 부분의 하도급률은 82%로 맞추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건설기계 대여비·자재비 등의 하도급률은 20% 수준까지 낮춰 저가 하도급을 조장하는 것이다. 발주기관에 제출되는 서류에서는 저가하도급을 방지한다는 적정성 평가 취지가 잘 지켜지고 있는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60% 내외의 저가하도급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으니 속임수이자 사기가 아니면 뭐냐는 항변이다.

간접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일부만 지급하는 방법으로 하도급업체들의 이익을 가로채는 행위도 공공연하다. 하도급업체 현장 사무실 운영비용, 전기요금 등 각종 현장 관리비를 포함하는 간접비를 전액 지급하지 않거나 일부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사기를 치는 것도 모자라 영세 전문업체들을 갈취한 것이다. 사실 간접비는 공사대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가하도급을 받은 상황이라면 다르다. 저가하도급으로 이미 기력이 쇠한 하도급 전문건설업체의 간접비를 잘라먹는 건 많은 짐을 진 채 겨우 일어선 낙타에게 마지막 지푸라기 한 올을 더 얹어 주저앉히는 것과 같다.

전문업체들의 이같은 문제 제기에 종합업체들은 “계약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적정성 평가기준을 어긴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가 되냐?”는 입장이다. “떠들테면 떠들어라. 우리만 살면 된다”라는 게 종합업체의 태도라면 건설업에서의 공정거래 정착은 먼먼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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