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국내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건설산업 혁신방안’ 로드맵 결과물 발표가 오는 9월로 예정돼 그 결과에 따라 건설산업계는 또다시 강력한 허리케인급 회오리에 휘말릴 전망이다. 최근 국토연구원이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내놔 웅성거림이 높아지고 있는데, 본격적인 여론수렴 과정이 전개되면 또 얼마나 각 이해관계 업종별로 치열하게 목숨을 건 공격과 방어를 벌이게 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10년 전인 2008년에 한번 겪었던 사단이어서 미뤄 짐작된다.

건설 산업의 선진화든 경쟁력 강화든 언제나 방안의 맨 앞은 ‘종합과 전문 업역의 통폐합’이 장식했다. 선진국들이 그러해서 그리해야 한다는 것인지, 실제로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실증이 이뤄져서 그러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건설 산업 선진화의 화두는 예전에도 지금도 ‘업역 통폐합’이다. 그러나 “업역을 해소하면 건설업의 생산성이 향상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보기로 삼으려는 선진국은 어떨까? 지금까지 발표된 각종 자료에 따르면 업역규제에서 유럽은 면허나 등록 규제 대신 시장 기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면허제도를 가진 미국, 일본, 싱가포르에서도 면허 종류와 원하도급 역할의 직접적인 연결은 약한 편이다. 또 공사의 규모에 따른 원도급자 면허를 두는 나라도 있다. 업종 구분에 있어서는 복합공사의 경우 대부분 토목(설비 포함)과 건축으로 구분하고, 단종공사의 경우 일본 27개 허가, 미국 42개 면허, 싱가포르 28개 등록 등 다양하고 세세하게 구분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겸업제한 폐지는 지난 2008년부터 도입돼 있지만 겸업업체는 전체의 2.4%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업역 통폐합은 뛰어놀 자유를 부여했는데도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으니 정글로 만들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육식공룡의 식탐이 그대로 있고, 관리자의 능력이 미흡한 쥬라기공원에서 전기울타리를 허문다면 볼 수 있는 광경은 살육일 뿐이다. 그래서 선진국들도 면허나 등록 규제 대신 시장기능에 의존하면서도 제한경쟁을 채택하고 사전자격심사와 보증보험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는 공사에 한계를 두고 있으며, 공종을 세분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발주자의 능력과 재량이 뒷받침되기에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공경험은 종합건설이 아니라 전문건설업체가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 전문건설업체 사이에서는 정설이다. 특정 공사에 투입되는 종합업체 인력 가운데 경험자는 한둘에 그치지만 이를 해낼 수 있는 건 하도급으로 참여하는 전문건설업체의 역량 덕이다. 종합업체의 코디능력과 전문업체의 시공능력으로의 분업화는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생산성 향상은 업역이나 업체가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해답이 있다는 것을 정책입안자들이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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