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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칼럼> 집값 상승이 낳은 슬픈 신조어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 승인 2018.09.1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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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대출’. 이 단어를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영끌대출’이란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을 받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주택담보대출을 최대한 받고, 신용대출도 받는다. 금융상품인 적금이나 정기예금, 펀드 해지는 기본이다. 여기에다 저축성 보험상품을 해지하고, 보험사 약관대출까지 받는다. 필요하다면 가족들에게도 돈을 빌린다. 사금융을 제외하고 개인이 돈을 조달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게 영끌대출이다.

이렇게 기를 쓰고 돈을 끌어 모으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서울집을 사기 위해서다. 자고나면 2000만원, 3000만원씩 집값이 오르니 집을 사지 않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어라 정부가 이런저런 규제를 걸어 놨다. 정상적으로는 담보대출을 받기 어렵다. 그런다고 포기할 개인들이 아니다. 머리를 짜낸다. 가계대출이 매달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이유다. 영끌대출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대책이 사실상 실패했거나 실패직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책 실패 뒤 남은 것은 신조어다. ‘똘똘한 한 채’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만든 용어다. 다주택자들에게 양도세를 무겁게 매겨 집을 내놓도록 하겠다던 8·2대책은 한 채를 ‘돈이 되는 곳’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다주택자들은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서울 시내 알짜 집을 택했다. 지방과 수도권 외곽은 매물이 증가하면서 집값이 떨어지는 원인이 됐다. 반면 서울시내 알짜 집은 수요가 더 늘어나면서 집값을 자극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갭투자’도 이번 정부에서 대중화된 신조어다. 전세를 많이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는 저금리가 낳은 괴물이다. 정부가 경기를 이유로 저금리를 고집하자 주택소비자들은 부담 없이 빚을 낼 수 있었다.

강남이 아닌 마포구·용산구·성동구의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뜻에서 나온 ‘마용성’도 새 단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집값이 특히 많이 오른 7곳을 뜻하는 ‘버블세븐’에 빗댔다고 볼 수 있다. 올 들어서는 ‘도서동’이 떠오르고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감을 잡았겠지만 도봉구·서대문구·동작구를 의미한다. 

정부가 분양가를 잡기 위해 분양가 규제에 나섰더니 이게 또 ‘로또청약’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주변 아파트 가격에 비해 분양가가 저렴해지다 보니 당첨만 되면 큰돈을 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로또청약의 백미는 디에치자이개포였다. 너도나도 청약에 뛰어들면서 ‘특공난민’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특공난민이란 특별공급 청약경쟁률이 일반 청약경쟁률에 육박하면서 하염없이 당첨을 기다리는 신혼부부 등을 말한다.

최근 들은 가장 서글픈 신조어는 ‘흙수저 고소득’이다. 정부가 대출규제나 주택공급 기준을 소득으로 정하면서 내집 마련이 어려워진 자산이 없는 맞벌이들을 뜻한다. 정부는 가구 합산 연봉이 7000만~8000만원을 넘으면 자력으로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턱도 없는 얘기다. 집값이 원채 비싸다 보니 부모님의 지원이 없다면 이들도 집사기가 불가능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들 신조어에는 정부의 부실한 대책을 비웃는 조롱과 월급을 따박따박 모아서는 서울집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민들의 냉소가 담겨 있다. 하반기에는 또 어떤 신조어가 나올까. 두려울 뿐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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