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A가 B에게 공사대금 1억원을 받을 게 있고, B는 A에게 물품대금 5000만원을 받을 게 있다면, A와 B는 이를 어떻게 처리할까요? A가 B에게 1억원을 청구하고 B가 A에게 5000만원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A가 B에게 5000만원만을 청구하는 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이처럼 채권자와 채무자가 서로 상대방에게 같은 종류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서로의 채권을 같은 액수에서 소멸시키는 것을 법률 용어로는 상계(相計)라고 합니다(민법 제492조).

위 사례가 소송으로 비화됐다면, 즉 A가 B에게 ‘공사대금 1억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면 B는 그 소송에서 ‘A로부터 5000만원을 받을 게 있으니 이를 A의 청구금액에서 빼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법률 용어로 상계항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상계항변은 소송법적으로 특이한 지위에 있으므로 주의를 요합니다.

판결은 확정되면 기판력(旣判力)이라는 효력을 갖습니다. 기존에 법원의 판단을 받아 확정된 내용을 나중에 다시 다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판력은 판결의 주문(판결문 중 ‘피고는 원고에게 000원을 지급하라’부분)에만 발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민사소송법 제216조 제1항). 유일한 예외가 상계항변입니다. 상계항변을 하면 법원은 판결 이유에서 상계항변으로 주장된 채권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 액수는 얼마인지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판단은 판결 주문이 아닌 판결 이유에 있지만 예외적으로 기판력이 미칩니다(민사소송법 제216조 제2항).

B가 A에 대한 물품대금 5000만원의 채권을 가지고 상계항변을 한 경우를 예로 살펴보면, ①법원이 심리 결과 A가 B에게 공사대금 1억원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채권이 없거나 이미 B가 지급했거나 등등), B의 상계항변 자체를 판단할 필요가 없으므로, B의 상계항변에 기판력이 미치지 않습니다. 즉 B는 A에게 다시 물품대금 5000만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②법원이 심리 결과 A가 B에게 공사대금 1억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우, B의 상계항변에 대하여도 법원은 판단하게 되고, 그 결과 B의 상계항변에 대한 판단 이유에도 기판력이 미칩니다. 즉 B가 상계항변으로 주장한 채권이 존재하지 않거나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B는 소송 외에서도 이를 A에게 청구할 수 없고(대법원 2013. 11. 14. 선고 2013다46023 판결 참조), B의 상계항변이 받아들여진 경우 상계된 채권의 금액에 대해 B는 소송 외에서도 이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상계항변은 기판력의 예외이므로 실무상 많은 복잡한 문제가 있고 판례도 다수 축적돼 있습니다. 상계항변에 기판력이 미친다는 사실을 모르고 소송에서 섣불리 주장할 경우 나중에 불의의 타격을 입을 위험이 있습니다. 상계항변을 하실 경우에는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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