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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표준시장단가 확대 적용’은 자충수다

“발주자는 적정공사비를 전제로
양질의 시설물을 확보해야 하고
건설업계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담보로
적정공사비를 요구해야 한다”

경기도가 공공공사 예정가격 산정에 적용하는 표준시장단가(실적공사비)를 100억원 미만 공사에도 확대해 추진하기로 함에 따라 석 달째 지역 건설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예산 절감과 적정공사비 확보 논란은 외환위기 이후 줄곧 줄다리기해 온 사안이다. 사실 팽팽한 맞서기라기보다는 한 쪽이 줄을 놓을 수 없어서 매달려 끌려가는 모양새이다. 포용적 성장과 공정경제를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적정공사비의 쟁점을 ‘돈 문제’에 국한시키는 것은 공공 발주자에게도 건설업계에게도 모두 현명하지 못한 처사이다. 본질을 외면한 의도적인 편협성과 대중 선동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공공 시설물 건설의 본질은 건립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과 품질이다. 어느 공공 시설물이든지 그 본질적 기능을 발휘할 수 없거나 기존의 기능과 서비스의 품질을 향상시킬 수 없다면 한 푼의 예산도 낭비돼서는 안 된다. 반면에 공공 시설물의 기능과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발주자는 기능과 품질 향상을 당연한 전제조건으로 하면서 예산 절감을 강변하고, 건설업계는 적정 공사비를 전제로 한 기능과 품질 향상을 주장한다. 양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본말이 전도됐다. 발주자는 적정공사비 지급을 전제로 해서 양질의 시설물을 확보해야 한다. 건설업계는 양질의 건설 서비스 제공을 담보로 해 공사비를 요구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점에서 경기도의 표준시장단가 확대적용 방침에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다. 먼저 공공 발주 시장에서 수요자(발주자)가 독점적인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독점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과 지방정부가 예산 절감을 명목으로 민간 기업과 다를 바가 없이 독점 이윤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기업이 입사하려고 줄 서있는 지원자들에게 왜 임금을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시장 경쟁 임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면서 인력을 채용하는가? 보다 우수한 인력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하물며 공공기관과 정부가 양질의 공공 시설물을 국민들에게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의도적으로 공사비를 낮추고 참여 기업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예산을 낭비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사비 대비 시설물의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사업관리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발주자의 총 사업관리 역량의 부족을 예산 절감의 광고판으로 위장해서는 안 된다.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 결정이 아니라 인위적인 가격 결정 체계를 운영하려면 합리적인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 표준시장단가를 100억원 미만 중소규모 공사에 확대 적용하기 위한 가격 산정의 근거가 미약한 점도 맹점으로 판단된다. 경제정책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을 가지려면 불편타당(不偏妥當)한 정보와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 100억원 미만 공사 참여자들의 실적공사비 자료를 축적해 분석해 왔는가? 전국체전 기록 경신의 기준으로 올림픽 기록을 제시해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표준’이라는 명칭이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권위’와 ‘신뢰’의 범위를 정직하게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게임 룰 설정자의 입장이 아니라 관찰자와 참여자의 입장에서 경제의 순환구조를 인식해야 한다. 공사비 삭감에 따른 건설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시설물의 품질 저하 우려는 물론 기업의 성장과 혁신 역량을 떨어뜨리고 생산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 다시 공사비 인상의 역효과를 유발할 것이다. 발주자와 최종 소비자인 국민은 단기적 이익을 얻다가 장기적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역선택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기업은 손익의 방향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손실을 감수하고서 애국심을 발휘하는 조직이 아니다. 발주자와 건설업체와 국민이 장기적인 경제 선순환의 편익을 최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호혜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경기도의 이번 방침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중소기업 육성의 혁신성장에 역행하는 잘못된 정책 선택이다. 고용 절벽과 경기 침체의 가속화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산업계의 공정경쟁을 철저히 감독하면서 경쟁적 성장을 지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신 세력으로 응징하려는 관점과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불공정 행위에 대한 건설업체의 책임은 엄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가 ‘돈만 집어삼키는 불가사리’는 결코 아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공공 시설물과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려면 경제적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 없이 품질 향상이 없고, 질적 발전 없이는 경쟁력 향상도 없다.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건설경제산업학회 회장

김태황 교수  ecothk@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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