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경기대회서 입상해도 사회는 푸대접

건설현장이 자동화, 모듈화되면서 단순·반복 작업에 투입되는 기능인력의 설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주요 공종에서의 숙련기능인 고용은 불가피하며 앞으로 내국인 부족사태에 따라 숙련기능인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특집호에서는 우리나라 건설기능인 양성 관련한 산업·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건설기능인에게 미래가 있나?=국내 한 건설특성화고의 교사는 건설현장이 너무 암울하다고 말한다. 고등학교에서 건설 기술을 배우고 현장에 나가도 경력직을 선호하는 건설업체들 때문에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 어렵게 취업해도 현장에서 반기지 않고 결국은 자신의 업종을 바꾸기까지 한다.

고등학교·대학교의 건설학과 인원은 점점 줄게 되고, 다른 학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인원이 다수 유입되기도 한다. 교육현장에서 전반적인 학생들의 열의는 바닥에 가까워 교사들도 힘이 나지 않는다.

기능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교육에 대한 수요가 적어 교육과정을 다양화·전문화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교육과정을 오픈한 후 폐강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요즘에는 훈련교사를 구하기도 어렵다.

건설기능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대우도 한참 부족하다. 제조업 같은 경우 명장·기능장 위치에 올라가면 회사에서 이를 인정해 공장장이 될 수도 있다. 건설업의 경우 기술과 노하우를 얼마나 갖췄는지 평가하기보다는 사업수완을 통해 건설업체를 만들어 그 규모를 얼마나 키웠는지를 성공의 척도로 삼아 기능보유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메달을 따면 기업들이 메달 수상자를 채용해가는 경우도 많았고, 기능을 인정받아 회사에 입사하고 직무교육을 통해 발전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메달을 따도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같은 사회 풍토가 고착화되면서 건설기능인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져만 간다.

◇무슨 역량이 필요한가?=기능인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족한 역량을 꾸준히 향상시키며 경력을 쌓고 관련 자격을 취득하면 기술자로 커나갈 수 있다. 건설분야 기능장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 기술자로의 가치를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난 2014년 우리나라는 건설기술자 역량지수(ICEC)를 만들어 기능인력도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과 경력을 지니면 건설기술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경로를 열어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 경로를 더 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역량지수가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에서 건설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기사자격을 취득한 초급기술자와 기능사를 취득하고 경력을 인정받은 초급기술자는 기본적인 건설 관련 지식수준이 달라 이들이 동등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설기술자의 경우 공사를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특정 공법을 선택하거나 설계를 변경하는 등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하지만 기능인력은 하나의 전문공종에 특화돼 작업하므로 전체 공사 관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현 제도에서 ‘기본적인 현장관리 역량’은 다수의 기능인이 가지지 못했지만 가져야 하는 역량이다.

한 교육기관의 사례를 보면 기능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추측할 수 있다. 초급기술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법정교육에 자녀를 대리출석 시키는 경우가 있어 교육담당자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교육장에서 교육을 들어도 알아듣기가 힘들어 자녀를 대신 보냈다고 한다. 교육현장에서 기능인 출신 기술자가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능인 위한 교육 절실=기능인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 2017년 12월 발표한 ‘건설기술자 교육·훈련제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기술자 전환 기능인력 대상 역량제고 교육과정 신설’을 법정직무교육제도의 중장기 개선방안으로 내놨다.

앞으로 기능인력 중 기술자로 진입하고자 하는 인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기능인을 위한 교육 과정을 별도의 트랙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일본의 ‘건설기술자·기능자 커리어 업(carrier up)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공사업에서 10년 이상의 실무경험과 2년의 전문공사 현장관리자로서의 경험이 있는 기능자가 일정기간동안 별도의 교육을 받으면 ‘등록기간기능자’ 위치에 오를 수 있다. 등록기간기능자는 종합공사의 주임기술자로 근무할 수 있다. 주임기술자는 토목·건축 일식 공사를 제외한 종합공사에서 현장관리를 할 수 있다. 일본 사례는 실무 경험을 쌓은 기능자를 교육을 통해 관리자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교육현장에서도 이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건설기술교육원은 미래 건설 기술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지난 10월 입찰공고했다.

용역에서는 국내 건설기능인력양성 수급체계 현황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층과 재취업자를 기능인 교육훈련을 통해 현장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한편 이같은 요구는 건설현장에서도 나온다. 서울 소재 전문건설사에 소속된 한 기능인은 “현장 생활을 하다보면 회사 눈치를 보다가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법정교육화 하고 인센티브를 주면 역량을 높이려는 기능인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직업 전망을 명확히 제시하는 독일=독일의 사례에서 기능인 관련 정책의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은 자격과 경력에 맞는 보수를 통해 청년층에게 직업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굳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마이스터 자격증을 취득하면 높은 보수와 명예를 약속받는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전문위원에 따르면 독일의 마이스터는 최고의 숙련인력이자 관리자 역할을 한다. 마이스터 교육훈련 과정에는 입찰 요령, 견적서 작성, 공정관리 내용과 구조역학 등 엔지니어 과정, 기본적인 내용, 후진을 양성하는 데 필요한 교육학도 포함돼 있다.

마이스터제도는 제조업과 연관이 크고 현재 우리 건설업에는 맞지 않는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도 있다. 하지만 건설기능인이 직업 경로를 설정하고 미래의 자신을 그리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독일은 이같은 고숙련인력이 정규직으로 고용돼 품질 좋은 생산물을 책임 시공한다고 자부한다. 결과적으로 독일에서 건설 분야의 마이스터는 상당히 높은 사회적 명성과 소득을 누리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뛰어들어 기회를 잡자=“젊은 건설기능인이 지금부터 착실하게 역량을 키워나간다면 자신의 가치는 끝없이 올라갈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건설업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예비건설기능인들에게 “건설업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공부할 것”을 추천한다. 젊은 건설인들이 턱없이 모자란 현재 상황이어서 희소가치가 크고, 건설업은 타 직종보다 임금 수준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건설공제조합 기술교육원 1기 졸업생이자 현재 인천 소재 종합건설업체 이사직에 있는 민영관씨는 예비 건설기능인들에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 본인에 대한 대우는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공무능력’을 갖출 것을 강력 추천했다.

민씨는 28살의 나이에 보링그라우팅 전문건설업체에 입사한 직후, 공무업무를 배우게 됐다. 관련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30대 초반부터 현장소장직을 맡았다. 현재는 직장을 종합건설업체로 옮겨 현장 5곳을 관리하고 있다.

민씨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며 현재 인천의 한 제방도로 확장공사의 현장소장인 김태한씨도 전문조합 기술교육원 1기 졸업생이다. 김씨는 공사파트에서 근무해 오고 있으며 관련 자격증을 따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김씨는 “내 나이가 지금 20, 30대라면 건설업에 뛰어들어 현장의 핵심인력이 되기 위해 갈고 닦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현장에서 나오는 교사들의 조언도 비슷하다. 서울 소재 특성화고 교사는 “건설업의 사정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외국인력에게 뺏기는 물량을 국내 기능인이 유입돼 가져온다면 미래가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다”며 “최근 40~50대가 현장에서 막내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이들이 노령화되면 젊은 숙련인력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