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2주년 특집 - BIM 선진국 싱가포르를 가다

최근 건설 산업이 생산성이 떨어지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능 인력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건설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건축물의 전생애주기를 한층 더 고도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2019년 준공될 예정인 ‘Jewel Changi Airport’ 건설 현장 모습.(사진제공=창이공항)

실제로 현재 건설현장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떨어지는 IT기술력과 기능인력의 고령화, 신규인력의 진입 실패 등으로 극심한 생산성 저하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설계단계에서부터 리스크를 줄이고, 보다 더 촘촘한 건설 공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요구를 가장 현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BIM (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BIM이란? 건설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BIM은 건축물의 생애주기와 모든 물리적·기능적 특성을 디지털로 표현해 주는 기술로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유지관리자 등 건설 산업 참여자 모두에게 건축물의 디지털 정보를 제공해 주는 플랫폼이다.

BIM을 활용하면 설계단계에서부터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등이 협력해 최적의 설계안을 도출하고, 가상공간에서 사전에 먼저 건축물을 가상시공(시뮬레이션)해 본 뒤 실제 공사에 돌입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면서 실제 시공에 앞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공사기간도 보다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BIM=건설 산업에서 4차 산업을 주도하는 기술 중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BIM이다. 세계 주요 건설 선진국들은 BIM의 가치를 일찍부터 인식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조달공사에서 이를 의무화해 자국에서의 활용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해오고 있다.

미국은 2008년 연방정부 사업부터, 영국은 2011년 이후 공공건물 조달사업을 시작으로 BIM 적용을 의무화했다. 싱가포르는 2012년 공공을 시작으로 2015년 모든 현장에 BIM을 의무적용하고 있다. 홍콩은 2015년부터 공공발주 현상설계에서 BIM을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BIM 통해 생산성 30% 향상 추진=현재 싱가포르는 다른 건설 선진국보다 건설 산업 생산성 향상에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매년 2~3%씩 건설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BIM의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정부 차원의 로드맵을 수립해 생산성 향상을 꾀하고 있는 부분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민간에서 BIM을 현장에 도입할 경우 △입찰 가산점 부여 △BIM 프로그램 구입비용 지원 △BIM 도입 현장에 대한 달러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실제로 2015년 8억 싱가포르달러(약 6530억원) 규모의 ‘건설 생산성 펀드(CPCF, Construction Productivity and Capability Fund)’를 조성해 지원하는 등의 확실한 정부차원의 유인책이 마련되면서 2018년 기준 싱가포르 내에 진출한 건설업체 중 70% 이상이 BIM을 활용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받는 방법도 까다롭지 않다. BIM의 경우 현장에서 활용하기만 해도 프로그램 구입비용과 현장에 대한 달러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정부의 노력으로 현지 건설업체들은 정형화된 주택 등 건축물은 물론, 시공이 까다로운 비정형 건물들에까지 BIM을 사용해 완성도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공이 까다로웠던 것으로 유명한 창이공항이 있다. 창이공항의 경우 한화로 5조원이 넘게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던 만큼 산발적으로 복잡하게 공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BIM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참여 업체들의 설명이다.

창이공항 건설프로젝트에 참여했던 BIM 컨설턴트업체인 BIM DOCTOR의 정숭용 대표는 “창이공항의 경우 활주로부터 청사 등 건축물까지 모든 영역에서 BIM이 활용됐다”고 말했다. 활주로의 포장 층만 10가지 이상이 되는 등 광범위한 데이터가 필요한 공사였던 만큼 BIM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창이공항은 공사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많은 건축물이 비정형으로 시공돼 변수가 많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현지 업체 관계자는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의 공사였다면 수개월의 공기 지연을 일으킬 만한 돌발 상황이 수없이 발생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공정과정까지 뽑아낼 수 있는 4D 개념의 BIM을 활용한 덕분에 공사간 간섭이 최소화돼 현장은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싱가포르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 산업 생산성이 높은 나라가 아니었다. 2010년대 들어서 크게 향상됐다. 그 바탕에는 이와 같은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 됐다.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는 “싱가포르에는 해외 건설 근로자가 많아 인건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보다는 정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며 “그러나 저급 노동력의 과도한 확산 등으로 생산성이 급격히 나빠지자 정부가 나서 기술 확산을 장려했고 현재 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BIM·공장제작은 최고의 파트너=BIM과 공장제작 및 조립 방식(DfMA) 기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다. BIM을 통해 3D 기술로 미리 건축물을 시뮬레이션 해보면서 공장제작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줄어들어 초정밀 시공이 가능해져 기술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도 공장제작 방식이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인 BIM과 통합돼 건설생산성 혁신을 가속시킬 것으로 보고 제도개선과 건설생산성 및 역량 지원 펀드 등을 통해 공장제작과 BIM 등의 신기술 활용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공장에서 사전에 제작되고 있는 크라운호텔 객실(왼쪽)과 공장제작으로 완공된 호텔 외관 모습. (사진제공=WD)

이같은 정부의 노력으로 싱가포르에서는 여러 건의 건축공사에서 BIM과 공장제작을 시범적으로 활용, 공기 단축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중 2016년 완료된 ‘크라운 플라자 호텔 증축공사’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장제작 프로젝트로 꼽힌다.

크라운 호텔 시공사인 UB(UNITISED BUILDING) 측에 따르면 해당 현장에서는 공장제작 방식을 도입해 정통적인 건설현장보다 40%가량 작업시간을 절약했다. 현장에서 기초공사를 하는 동안 공장에서는 건축물을 제작하고 공정 시기에 맞춰 운반한 뒤 바로 시공을 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대폭 축소됐다.

특히 BIM과 공장제작 기술을 함께 활용하면서 설계변경 등의 리스크가 대폭 줄어들고, 공정과정이 정밀화되면서 근로인력과 건설자재의 배송·보관비용 등이 크게 줄어 다른 현장 대비 최대 75% 가량의 비용절감 성과를 올렸다.

UB는 또 공장제작을 통해 현장 안전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건축물들을 통제된 환경을 통해 이동시키고, BIM에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대로 신속·정밀하게 시공하면서 현장의 위험요소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서울 면적(605.52㎢)의 1.15배 밖에 되지 않는 국토면적의 한계를 안고 있어 생산공장 부지가 필요한 공장제작 방식에 큰 약점을 안고 있다. 이에 현재는 호주·홍콩 등지서 제작해 배로 운송하는 방법으로 공장제작을 실현시키고 있다.

놀라운 점은 운송비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공장제작 방식이 BIM과 함께 활용될 경우 경쟁력이 있다고 싱가포르 정부가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싱가포르 정부는 공장제작을 통해 공기단축, 리스크 감소, 민원 저감 등에서 막대한 효율을 올릴 수 있어 최대 40% 가량의 생산성 향상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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