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2주년 특집 - 성범용 다케나카건설 유럽부사장 조언

“건설이 울타리에 갇혀 사육사가 주는 사료(시장 물량과 배분)와 수의사(법과 제도)의 보호에 너무 익숙해졌다”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한국건설을 진단한 내용 중 일부다. 이 지적처럼 우리 건설업계는 수십 년 동안 정부가 물량을 만들어내고 이를 나눠먹는 구조로 산업이 발전해 왔다. 인프라 구축보다 복지 중심의 정책기조가 확고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이 폭발적인 물량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건설기업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야 할 때다.

이제 건설기업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자구책은 결국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생산성 혁신이 유일한 답이다. 반면 청년 건설인의 유입 부족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력’ 중심의 생산성 향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와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일본의 5대 건설사 중 한 곳인 다케나카건설의 유럽 부사장을 겸직하고 있는 성범용 중앙대 건설대학원 석좌교수는 “건설 선진국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한다”며 “생산성 향상은 사람중심에서 벗어나 장비와 자재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선진국에서도 청년층의 기호가 바뀌면서 건설업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성범용 교수는 선진국의 건설기업들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초기엔 ‘인력’에 초점을 둔 전략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선 지난 30년 동안 과거 동구권 국가들이 건설현장에 비교적 낮은 인건비의 젊은 인력을 제공해 왔다”며 “하지만 개개인이 갖고 있는 기술력과 생산성의 차이로 인해 공사 품질과 공기의 문제가 제기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건설사들은 해외인력 유입과 병행해 건설자동화와 공장제작‧현장조립 방식의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건설장비의 추가 기능을 늘리고 규격을 다양화해 한 가지 장비로 더 많은 일에 활용하고 있다. 또 자재를 공장에서 제작하는 프리패브(Prefab, pre-fabrication) 비율을 점점 늘려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공법들도 많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와 비교해 ‘골조의 조립화’ 차이가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 Precast Concrete) 공법은 일반 콘크리트 골조(RC, Reinforced Concrete)에 비해 공사비가 10%가량 비싸지만 더 보편화됐다. 인력부족 문제와 춥고 우기가 긴 겨울형 기후에 대응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 교수는 건설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해외 선진제도를 받아들일 경우 그 제도의 배경과 국가별 사정까지 혼합비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벨기에와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각종 제도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국가 전체를 R&D 기지로 만들 수 있는 규모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 R&D와 시범사업을 기초로 민간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식을 취해왔다. 또 경험을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때문에 소국들처럼 선진제도라고 해서 그것을 공격적으로 수용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예로, 건설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일본도 외국인력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험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건설현장의 외국인 비율이 많게는 70~80%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본은 10%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도 건설선진국이고 다른 나라에서 겪지 못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스스로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범용 교수는 끝으로 산업화 시대엔 ‘보호’를 통해 불필요한 경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육성했다면, 4차 산업혁명시대엔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회가 건설에 요구하는 사항이 복잡 다양해졌고, 그것에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건설 산업과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며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여러 가지 변화가 부작용이나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지만 그 벽을 넘어서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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