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용을 받을 권한만 있으면 시공사가 아니라도 부동산에 담보 설정을 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공사도급 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도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문모씨가 “부동산에 설정된 A사 명의 근저당권 설정을 말소해야 한다”며 낸 사해행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원심은 문씨 주장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일부만 받아들일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사대금 채권이 양도되는 경우 저당권설정 청구권도 함께 이전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축건물의 수급인에게서 공사대금 채권을 양수받은 사람의 청구로 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은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1심 판결에서 추가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부분을 파기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문씨의 채무 관계가 얽혀있던 대구 북구의 한 신축 건물에 A사 명의로 근저당권이 설정된 것이 문제가 된 사안이다. 문씨는 이 ‘건물 공사를 맡았던 B사로부터 빚과 위약금 등 약 92억원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사해행위)’는 취지로 근저당권 설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앞서 문씨는 건물 신축공사를 맡았던 B사와 대지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2010년 6월4일 건물 소유권에 관한 조정을 했다. 문씨가 건축주 명의를 B사로 넘기는 대신 돈과 신축건물 일부 등 22억원 상당을 받는다는 등의 내용이다. 또 2012년 3월31일까지 이행하지 않으면 위약금 70억원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후 문씨는 2011년 7월 서류를 제공하는 등 조정이행을 위해 협조하고 2011년 9월16일에는 집행문까지 받았지만, 채무초과 상태이던 B사는 결국 조정이행을 하지 못했다. 결국 건물에는 2013년 11월4일 강제경매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문제는 B사가 2013년 10월30일 해당 건물에 A사 명의로 채권 최고액 100억원 규모의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것이었다. 당시 B사는 신축공사 하도급을 맡겼던 다른 회사에 주지 못한 공사대금 약 18억8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A사에 줘야하는 상황이었다.

이후 문씨는 “채무초과 상태이던 B사가 근저당권 설정을 해준 것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 근저당권을 말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소송이 시작됐다.

재판에서 쟁점은 B사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을 권리를 인수한 A사를 상대로 건물에 담보를 설정할 권리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민법상 하도급 업체는 공사대금을 받기 위해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할 수 있지만, A사는 공사를 수행한 당사자가 아니라 그 공사비용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양수자’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1심은 “B사가 채무초과 상태에서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자체는 사해행위”라고 보면서도 “A사가 인수한 공사대금 채권 범위 안에서는 사해행위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도급 업체가 공사대금을 받을 권리를 A사가 인수했으므로 부동산에 담보 설정을 할 권한까지 보유한다고 봤던 것이다.

이에 따라 1심은 A사 명의의 근저당권 설정 자체는 유지해야 한다고 보면서, 설정액만 기존 100억원 규모에서 약 20억5934만원으로 낮춰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금액은 B사가 원래 하도급 업체에게 줘야했던 공사대금과 지연손해금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A사가 담보 설정을 할 수 있다고 인정된 액수다.

반면 2심은 “A사와 B사 모두 이 근저당권 설정으로 문씨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며 “A사는 하도급 업체가 아니라 공사대금을 받을 권리만을 양수한 것에 불과하므로 저당권 설정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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