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설에 기술인 역량을 평가하는 농담 수준의 3가지 잣대가 있다. 면허(license)와 같이 국가 공인자격, 제도(institute)가 만든 등급 자격, 그리고 시장(market)이 요구하는 직급 자격(certificate) 등 3가지다. 앞의 두 가지는 분명 자격증 혹은 등급 기반이지만 시장 요구 잣대는 역량이 우선이다. 자격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는 절대평가제다. 역량은 비교 우위가 상대평가를 통해 가늠된다. 국내 건설기술인 혹은 책임자는 역량보다 자격 혹은 등급 기반의 절대평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사례를 통해 건설기술인이 어떤 식으로 평가돼야 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역량이 혁신돼야 하는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2016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영화 속 얘기다. 주인공 셀렌버거 기장은 파일럿 면허를 보유했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새 떼와의 충돌로 엔진 두 개가 작동 중지됐다. 관제탑에서는 공항으로의 회항 지시를 내렸다. 기장은 관제탑으로부터 나온 지시는 항공기가 처한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장은 허드슨 강에 착륙시켰고 승객 155명 전원의 생명을 구했다. 관제탑의 명령은 규정에 맞췄지만 기장의 판단은 현장 상황에 맞췄다. 기장은 조종사 면허뿐만 아니라 탁월한 역량도 갖췄다. 기술의 수요자인 승객은 당연히 역량이 탁월한 기장을 찾는다.

두 번째 사례는 일본의 한 연구소가 연구동을 신설하면서 건설관리책임자 공모를 위해 내놓은 역할과 역량 요구서다. 책임자가 관리해야 할 대상 사업에 대한 소개가 간략히 서술돼 있다. 책임자의 역할과 책임은 12가지로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역할과 책임을 소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경험과 지식수준도 10가지로 서술했다. 평가 시 우대를 해줄 수 있는 분야도 5가지로 기술했다. 일본에서 취득한 자격증 보유, 대학 캠퍼스 공사 경험, 공공공사 경험 등에 대해 평가 시 우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세계적인 연구소를 지향하기 때문에 일어·영어 능통자를 우대하는 점이 눈에 뛰었다.

세 번째 사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하철 공사 건설 입찰안내서에 명시된 책임자 및 주요 기술인 자격 및 역량에 대한 내용이다. 매립지에 건설되는 지하정거장 공사로 사업규모는 1000억원을 약간 넘는 규모다. 연약지반 공사 등 핵심 기술과 이를 소화 혹은 책임질 수 있는 포지션에 대한 요건을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입찰업체에 대한 자격이나 역량은 제외하고 기술인 혹은 책임자에 대한 것만 따로 예를 들고자 한다. 주요 책임자 혹은 부책임자와 기술책임자가 반드시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을 3가지로 정립했다. 먼저, 책임자 및 기술책임자는 제안서 제출일 기준으로 최소 5년 이상 해당업체에 상시 고용돼 있어야 한다. 둘째, 책임자는 토목공사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과 10년간 5000만 달러 이상 사업에서 주요 보직 경험이 있어야 한다. 셋째, 부책임자는 최소 15년 이상의 경력을 요구했다. 학력이나 자격증에 대한 요건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국내 건설에서는 역량보다 자격 혹은 등급 중심으로 평가한다. 자격이나 등급은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역량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고 자격자 간에 상대평가가 어렵다. 하한선은 무자격자 탈락, 상한선은 자격보유다. 문제는 상한선이 자격의 상한인지 기술의 상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기술의 상한선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당연히 기술사는 최고 경지에 이른 기술인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기술자격증이나 등급제는 순수 국내시장에만 적용 가능한 제도다. 물량 배분을 기반으로 한 시장에서는 절대평가만으로 커트라인을 정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은 상대평가가 주도하는 무한 경쟁이다. 자격보다 역량 중심이 기본이다. 국내건설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기술인이 갖춰야 할 역량이 어떤 수준인지가 분명해진다.

글로벌 기업은 자체 내 사업조직 포지션별 직무 역량서를 운용하고 있다. 주요 포지션을 소화시키기 위해 필히 갖춰야 할 지식(학습과정)과 경험(경로)을 규정하는 지침서 및 절차서를 운용한다. 주요 포지션별 내부 인증서(certificate) 취득 기준도 상세히 서술돼 있다. 사업의 주요 포지션에 사람을 지명하고자 할 경우 인증서 취득자간 경합을 시킨다. 인증서 취득 여부가 승급이나 승진과 연결돼 있어 개개인의 연봉과도 직결된다. 연공서열보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술의 상한선이나 최고 기술자 자리에 상한선이 없다. 등급 혹은 자격은 역량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자격과 등급 중심인 국내 기술인의 역량 평가방식에 전면적인 혁신을 주문하고 싶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