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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칼럼>제비뽑기와 시장
  • 전범주 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19.03.1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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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곳에 널찍하고 근사한 아파트를 짓기로 했다. 어떤 방식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해야 입주민들의 행복(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재미있는 경제학 논문이 있어서 소개한다. 김진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013년에 쓴 ‘예산 제약이 있는 경우 효율적인 자원배분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라는 글이다.
이 논문의 기본 아이디어는 분양가 상한제에서 비롯된다.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 상한제를 실시하면 시장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가 없는 사람도 분양시장에 참여하므로 추첨으로 분양권을 나눠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아파트에 대해 사실상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추첨을 통해 분양권을 나눠주게 되면 명백한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진심으로 그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에게 거주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높은 가격을 써내는 순서대로 아파트를 나눠주는 완전경쟁시장은 ‘부자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수 있어 사회적 효용이 떨어진다. 집이 여러 채 있지만 투자가치를 보고 한 채 더 사두려는 부자보다, 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대가족을 부양하는 실거주자가 이 아파트를 통한 사회적 효용을 더 키울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청약가점제를 통해 무주택자들에게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로 아파트를 추첨·공급하는 현 정부의 아파트 분양정책은 정당성을 가진다.

하지만 청약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 추첨제를 통한 사회적 효용은 다시 떨어지게 된다.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정말 그 집에 살고 싶은 사람이 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분양권을 웃돈(프리미엄) 받고 거래할 수 있는 재판매시장을 분양권 추첨제와 함께 운용해야 입주민들의 행복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결론 낸다. 운 좋게 분양권을 얻은 사람 중에 분양권 전매 가격보다 주택의 주거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분양권을 팔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돈도 충분히 있고 아파트에 대한 가치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운 좋은’ 사람들로부터 분양권을 사들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분양권의 재판매 가격 이상으로 아파트의 실제 거주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만 이 아파트에 모여 살게 된다.

이 논문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현실세계를 오롯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제비뽑기로 대표되는 형평성과, 재판매 시장으로 상징되는 효율성이 함께 작동할 때 다수의 행복 총합이 극대화 된다는 점은 되새겨볼 만하다.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해 11월 하락반전 한 이후 넉달 가까이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다. 급기야 불패 성역으로 남을 것 같던 서울 아파트 청약시장에서도 미분양이 나기 시작했다.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전문가들도 수두룩하다.

서울 집값 잡기에 올인했던 문재인 정부의 1기 국토교통부 수장은 이번 개각에서 교체된다. 이제 2기 수장은 주택거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규제로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제비뽑기만으로 사회성원의 행복을 담보할 수 없다.

전범주 매일경제 기자  bomju@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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