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공공 공간·시설에 깃드는 ‘권력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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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공공 공간·시설에 깃드는 ‘권력의 횡포’
  • 원용진 교수
  • 승인 2019.04.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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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의 상업적 공간 증대에 맞서
 해독제가 돼야 할 공적 공간에
 ‘관계자 출입금지’, 불명 시설 등
 음습한 권력의 기운이 풍긴다
 공적 공간이 거꾸로 가고 있다”

어포던스(affordance). 디자인 분야나 공학계열에서 즐겨 사용하는 용어다. 최신 용어인 탓에 사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 ‘행동 유도’ 정도로 우리말 번역이 가능하다. 디자인에서 단박에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디자인은 그 실천을 통해 행동을 유도하고자 한다. 통행로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가 갖는 위력을 생각하면 된다. 화장실 문에 그려진 그림 하나가 이용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도 그 예다. 이 개념은 공간과 연결시켜도 유용하다. 공간의 배치, 설치, 설계도 어포던스를 갖는다. 공간 디자인은 사람을 편하게 혹은 불편하게 이끄는 힘을 갖는다는 말이다.

현재 일상 속 공간은 우리의 행동을 어느 쪽으로 유도하고 있을까. 공간의 상업화 속도는 빛과 같아서 돈 내지 않고 발을 디딜 만한 곳이 흔치 않게 됐다. 상업화 공간이 늘면서 심성도 많이 바뀌었다. 상업적 공간에 들어가면 뭐라도 하나 주문을 해야 맘이 편할 정도로 심성도 돈 셈법에 익숙해졌다. “움직이면 돈이다”라는 우스개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셈이다. 금전적으로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세상과 만나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공간의 상업적 배치가 우리로 하여금 공간을 사용할 때마다 ‘지불’을 연상하게끔 유도하니 공간 배치, 디자인, 설계를 지속적인 사회 의제로 만드는 일은 소중하다.

공간의 배치, 디자인이 상업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는 공적 배치다. 국가나 공공이 지닌 공간을 비상업적으로 디자인해서 활용하는 일은 그래서 늘 소중한 일이다.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고 활용하는 공적 공간은 공간 해독제 역할을 해내는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공원, 도서관, 공설운동장, 주민자치회관, 공립박물관, 공공교통 등등. 세금으로 주로 충당되는 그런 공공 공간은 너르기도 하고, 사람을 압박하는 재촉도 덜하고, 적은 비용이 든다는 장점을 갖는다. 간혹 비효율성으로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상업적 공간에 비하면 맘도, 몸도 편한 느낌을 전해준다.

그런 공적 공간에 전에 없던 어포던스가 등장하고 있다. 지하철 승강장을 예로 들어보자. 지하철 승강장에는 너무 많은 설치물이나 폐쇄 공간이 존재한다. 어김없이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왜 그 공간이 필요한지 알 수도 없음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들여다볼 길도 없다. 역무원 숫자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음에도 그런 불명의 공간은 더욱 늘고 있다. 그런 공간의 증가를 어포던스와 관련시켜 보면 불만 제기는 정당해 보인다.

첫째, 불명의 공간은 사람이 오가는 데 큰 불편을 준다. 지하철 승강장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협소해졌다. 간신히 칼 몸을 만들어야 통행이 가능한 곳이 늘어났다. 그 통행로 곳곳에 간이 시설, 커다란 자물쇠를 단 불명의 공간이 버틴 탓에 불편함이 늘고 있다. 우리 몸을 불편하게 유도한다는 점에서 그는 지적 받아 마땅하다.

둘째, 공공 공간에 설치된 시설들이 불명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간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그런 공간은 늘 권력으로 다가온다. 이른바 과거 안가와 같은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다 필요해서 만든 공간이니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권력 의지를 시민에게 전한다.

셋째, 시각적 쾌적함을 해치고 공공 공간은 음습하다는 심성으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지적받아 마땅하다. 그런 시설, 공간은 예외 없이 칙칙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감추려 들다보니 시각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 공공시설에 대한 부정적 심성을 만드는 그런 작업에 불만을 가지는 일은 당연하다.

넷째, 그 공간을 늘 오가는 시민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민주적 어포던스라고 부르고 불만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필요하면 언제든 뚝딱 짓고, 그 정체를 알리지도 않는다. 불편함은 시민의 몫이 되고 마니 그를 두고 비민주적이라는 말 말고는 적당한 표현법이 있을까.

상업적 공간 증대에 맞서 해독제 역할을 해야 할 공간에서 발생하는 권력적 어포던스. 그에 대한 어떤 제재 움직임도 없다. 바쁘게 돌아가느라 사회 어디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행동과 심성은 음습해지고, 권위적이고, 칙칙하고,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그런 모습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차라리 돈 내고 이용하고 말지’라며 상업적 공간에 더 익숙해지고 공공 공간을 내팽개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비용들이지 않고 편하게 사는 일을 꿈꾸지만 현실은 점점 그 반대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원용진 교수] koscaj@kos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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