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의 어처구니 없는 발상

주택공사가 신규계약지구에 대한 공동주택 하자담보책임기간을 일률적으로 10년으로 변경하려 하는 바람에 건설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주택공사가 하자보증기간을 모조리 10년으로 변경한다면 그 자체로 건설업계가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되겠지만 특히 민간건설업계로 파급효과가 이어질 것을 감안할 때 일파만파의 충격파가 예상된다. 하자담보책임기간이 일률적으로 10년으로 정해지면 건설업체들은 막대한 금융비용 증가 등으로 사실상 사업을 하기가 불가능해진다. 10년간 하자책임을 지면서 버텨낼 수 있는 건설업체가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주택공사가 하자보증기간을 갑자기 10년으로 변경하려는 것은 대법원의 판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4월 대법원은 ‘집합건물의 소유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종에 관계없이 10년으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주택법의 하자보수에 관한 관련규정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공동주택의 하자보수 절차·방법 및 기간 등을 정하고 신속히 하자를 보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정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집합건물법은 분양자의 담보책임에 관해 민법(10년)을 준용하면서 강행규정화돼 있고 이 법 부칙에는 “주택법상의 관련규정은 집합건물법의 기본적인 권리를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만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택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분양자는 집합건물법에 의한 10년의 하자담보책임이 있다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주택공사는 관계법령 개정을 추진하는데 시일이 많이 소요되고, 대법원 판결 결과의 즉시 수용 및 대응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신규계약지구에 대해 건설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하자담보책임기간을 10년으로 변경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주택공사의 급한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주공의 대응방식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대법원 판결선고가 내려진 4월9일 이후 주택공사가 건설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3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갑자기 하자보증기간을 10년으로 변경하겠다고 나서는 태도는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발주기관의 횡포 밖에 안된다. 하자책임 10년의 부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당사자가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안면몰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더군다나 대법원 선고가 내려지기까지는 2~3년의 기간이 소요됐을텐데 이 기간중에라도 건설업계와 힘을 합해 집합건물법 개정에 나섰더라면 오늘날과 같이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이 초래되진 않았을 것이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령 및 국가계약법령은 교량·터널·공항·댐·대형공공건축물 등의 골조 또는 구조상 주요부분에 대해서만 최장 10년까지의 하자책임기간을 적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골조 및 구조상 주요부분이 아닌 전문공사에 대해선 세부 전문공사의 공종별 구분에 따라 별도의 하자책임기간을 설정해 마감위주의 대부분 전문공사는 1년, 승강기·방수 등 일부 전문공사는 최장 3년까지 하자책임기간을 적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유독 집합건물법만 공종에 관계없이 하자책임기간을 10년으로 정한 것은 정말 불합리하다. 현실에도 전혀 맞지 않는 악법이다. 주공은 엉뚱한 발상을 집어치우고 건설업계와 중지를 모아 관련법규의 개정에 혼신을 다해야 한다. 건설교통부를 비롯한 정부도 잘못된 법규정으로 건설업계가 큰 타격을 받는 일이 없도록 법개정 작업에 적극 나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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