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혜선 의원 - ‘말할 권리’가 없는 ‘을’들
상태바
추혜선 의원 - ‘말할 권리’가 없는 ‘을’들
  • 추혜선 국회의원
  • 승인 2019.05.13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혜선 국회의원

올해 초부터 예정에 없던 교도소 면회를 가게 됐다. 자동차 2차 협력업체를 운영해왔던 이들은 1차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견디다 부도 위기에 처하자 납품 중단을 선언했다가 공갈죄로 실형을 받았다. 하도급 ‘갑질’ 피해자가 공갈 가해자가 돼서 감옥에 갇힌 것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당의 공정경제민생본부장을 맡으며 네 차례에 걸친 ‘갑질 피해 증언대회’와 ‘조선업·자동차 산업 갑질 피해업체 간담회’를 개최했다. 본사의 불공정행위에 생존의 벼랑 끝에 선 가맹점주·대리점주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을’들을 만나며 눈물어린 호소에 함께 울었다.

업종과 ‘갑질’의 유형은 달랐지만 피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말할 권리’가 없다는 것. 불공정행위를 당하면서도 거래가 끊기거나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잘못됐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오랜 기간을 견딘다. 견디다 못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때는 이미 시효가 만료돼 있거나, 소송을 걸었다가 ‘김앤장’과 싸우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곤 한다.

더 큰 문제는 공정경제를 이끌어야 할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발주한 사업에서도 이런 불공정행위가 많다는 점이다. 국방부가 발주한 평택미군기지 이전사업에 대형 건설사의 하도급업체로 참여했다가 대금을 제대로 못 받고 도산한 중소기업, 공기업이 발주한 공사를 하다 공기가 2년이나 지연되는데도 하도급대금 증액은 없고 비용 부담만 늘어난 건설업체들이 그 사례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만큼은 모든 사업 참여자들이 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발주자인 정부·지자체·공공기관에 관리 책임을 부여하자는 것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하도급 ‘갑질’이 가장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곳이 바로 건설 현장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서면 미교부, 하도급대금 미지급이나 부당 감액, 중도 계약해지 등이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건설하도급 분야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제도 개선이다. 지난 3월 전문건설업체들과 간담회를 갖고 국회 상임위에서 지급보증 면제 사유를 너무 폭넓게 규정하고 있는 하도급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공정위원장의 확답을 받아냈다. 대기업의 신용등급에 따른 면제 조항 삭제, 직불 합의의 경우에도 계약체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서면 합의한 경우로 한정, 지급보증서 사본 교부 의무화의 내용을 담을 것을 제안했다.

전문건설업체들의 오랜 요구였던 공기 연장 시 하도급대금을 증액하는 법안이 상임위 법안소위를 통과할 수 있게 한 것도 성과다. 물론 상임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라는 많은 문턱을 넘어야 하지만 말이다. 대기업들의 반대를 빌미로 법안 통과에 미온적인 의원들이 있었지만, “전문건설업체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절박한 법안”이라며 소위 의원들을 설득했다.

앞으로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꾸준히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가 국회에 더 크게 울리도록 할 것이다. 현장의 세밀한 문제까지 살펴 입법과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 그리고 결국에는 ‘을’들이 스스로 연대하고 ‘말할 권리’를 갖게 하는 것, 다시 말해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의당 의원(정무위원회, 비례대표)

[추혜선 국회의원] koscaj@kosca.or.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