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재건축조합장 A는 재건축업무대행사로부터 공갈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자칫 A가 구속되면 조합장의 직무집행이 사실상 정지돼 조합의 업무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될 위험이 컸습니다. 고소 내용의 진위 여부도 객관적으로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고소의 주된 목적 또한 조합장 A의 직무집행을 방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소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A는 급한 대로 이사회 결의를 거쳐 변호사 선임비용을 조합비용으로 우선 지출했습니다. 그리고 이사 및 대의원회에서 지출내역을 보고·인준도 받았습니다. 조합비용으로 A의 변호사 선임료를 지출한 것이 문제가 없을까요?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A에게 업무상횡령죄 성립을 인정했습니다(대법원 2006. 10. 26. 선고 2004도6280 판결). 조합장 A가 자신을 위해 형사사건의 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은 재건축조합의 업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즉, 공갈 고소내용은 조합장으로서 적법한 업무집행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조합장 개인의 위법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조합장이 개인적 비리로 구속돼 재건축조합의 업무수행에 지장이 초래된다 해도 이는 A에 대한 적법한 법 집행으로 인한 반사적 불이익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공갈 혐의가 분명하지 않고 조합장의 업무집행을 방해하는 것이 고소의 주목적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A가 재건축조합의 업무집행과 무관한 자신의 고소사건을 위해 변호사 선임료를 지출하는 것이 위법한 이상, A가 이사 및 대의원회의 승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횡령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사 및 대의원회의 결의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체의 대표자 개인이 당사자가 된 소송사건에서 변호사 비용을 단체의 비용으로 지출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단체의 비용으로 지출할 수 있는 변호사 선임료는 단체 자체가 소송당사자가 된 경우에 한합니다. 다만 예외는 있습니다. 분쟁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관계는 단체에게 있으나 법적인 이유로 대표자 개인이 소송당사자가 된 경우, 대표자로서 단체를 위해 적법하게 행한 직무행위 또는 대표자의 지위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의무적으로 행한 행위 등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한 경우 등이 그것입니다.

대표자나 임직원을 위해 단체의 비용으로 변호사 선임료를 지급해도 되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변호사 선임료 지급이 위법한 경우라면 설사 이사회 결의 등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이 치유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체의 대표자 개인이 당사자로 된 소송사건의 변호사 비용을 단체의 비용으로 지출해도 되는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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