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업에 불어닥친 ‘수축사회’

우리 경제는 과거와 같은 고도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저성장의 고착화를 넘어 경제가 수축되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기업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숙명적으로 치열한 수주 경쟁을 펼치는 전문건설사들은 새로운 경제흐름에 적응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미 건설시장의 변화는 시작됐고 이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9년 건설의 날을 맞아 지역 기반 중소 건설사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건설시장과 그 흐름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장기 저성장의 고착화를 넘어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는 일감이 줄면서도 기업은 늘어나고 있어 생존을 위한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9년 경제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수축사회’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4월 취임과 함께 화두로 던진 이 말은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사회 모든 영역의 기초 골격을 바꾸는 현상을 말한다. 미래의 성장을 낙관할 수 있던 팽창사회가 끝나고 수축사회로 사회 시스템이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CEO는 저서 ‘수축사회’에서 이 개념을 설명하며 팽창사회를 전제로 한 인식과 대응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줄어드는 세상을 받아들이는 치열한 현실주의다”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도 ‘수축사회’는 시작됐다. 지난달 전국의 주택 매매거래는 200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거래 위축이 장기화된다면 국내 건설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건축시장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생활SOC를 늘려 국민 삶의 질 향상과 함께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려 하지만 대형 SOC에 대한 투자 감소로 전체 파이가 줄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건설기업의 공공부문 수주액은 42조원 규모로 전년 47조원에 비해 약 10.3% 감소했다.

◇2015년 11월 개관한 서울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 벽돌연립 2채, 화강암 마감 연립 1채와 재래식 기와집 1채로 된 마을 그대로를 아연판 마감으로 덧대 하나로 묶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생활SOC의 대표 현장으로 방문한 바 있다. /뉴시스
◇2015년 11월 개관한 서울 은평구 구산동 도서관마을. 벽돌연립 2채, 화강암 마감 연립 1채와 재래식 기와집 1채로 된 마을 그대로를 아연판 마감으로 덧대 하나로 묶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생활SOC의 대표 현장으로 방문한 바 있다. /뉴시스

◇쪼그라드는 건설 일감=2017년부터 건설일감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주요건설통계’ 5월호에 따르면, 종합건설업 국내건설공사 수주액은 2008년에서 2014년 기간 동안 약 90조~120조원 수준이었다. 2015년 157조원으로 급증했고 2016년 164조원으로 고점을 찍었다. 이후 2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 수주액은 154조를 기록했다.

올해는 수주액 감소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산업연구원 박철한 부연구위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경기 선행지표인 건설수주는 올 1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9.4% 감소했고, 특히 민간수주는 14.7%가 줄어 5년9개월 내 가장 침체한 상황이다. 경기 동행지표인 건설기성 역시 1분기에 5.2% 줄며 3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고, 공공부문 기성은 1년9개월, 토목공종 기성은 2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건설 시장은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 종합건설 시장의 축소 흐름을 역행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문건설업의 계약실적은 2015년 62만여건·81조6900억원 수준에서 2016년 65만여건·91조5602억원, 2017년 66만여건·93조9887억원을 기록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올해 경기전망 중 전문건설업 계약액은 약 85조원이다.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감소폭이 문제일 뿐, 종합건설과 마찬가지로 수주액 감소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일감 줄지만 건설사 수는 증가세=건설 일감이 줄고 있지만 건설기업은 여전히 증가세다. 최근 몇 년간 인건비 부담 가중,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도입 가능성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건설의 위기에 대한 전망이 높았음에도 2016년을 전후로 진행된 건설업 호황이 기업체 수를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

전체 건설업체 수는 2010년 6만588개로 6만개를 넘은 이후 2013년까지 소폭 감소세를 보이며 5만9265개로 줄었다가 2014년부터 다시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엔 6만8674개로 2017년(6만5655개)대비 4.6% 늘었다. 5년 만에 약 9000여개의 건설기업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종합건설의 업체당 평균 수주액은 2016년 142억원으로 고점을 찍고 이후 133억원, 122억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건설업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2015년 3만7872개, 2016년 3만8652개, 2017년 4만63개, 2018년 4만1787개로 전년대비 각각 2.0%, 2.1%, 3.7%, 4.3% 증가했다. 3년간 약 7000개 기업이 늘었다. 전문건설사 공급과잉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앞서 살펴본 수주량 감소와 건설기업 공급과잉은 건설업계 전체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 이미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산업은 세계 선박 발주량의 급격한 감소와 과잉 생산설비가 원인이었다. 현재 건설 산업이 그 뒤를 밟고 있는 셈이다. 조선업 종사자와 조선소 소재 지역사회의 고통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건설업계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건설시장 변화의 방향은 정해져 있다=국내 전체 건설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다. 6만여개의 건설사 중 100여개를 제외하곤 모두 중소규모로 봐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온다.

◇경기도 성남시는 느티마을 경남·선경연립주택을 7번째 리모델링 지원 단지로 선정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1995년에 3~4층 규모 16개동 200가구로 지어진 이들 단지는 이번 선정으로 시로부터 안전진단·안전성 검토 비용 등을 지원받게 된다. /사진=네이버지도 항공뷰
◇경기도 성남시는 느티마을 경남·선경연립주택을 7번째 리모델링 지원 단지로 선정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1995년에 3~4층 규모 16개동 200가구로 지어진 이들 단지는 이번 선정으로 시로부터 안전진단·안전성 검토 비용 등을 지원받게 된다. /사진=네이버지도 항공뷰

이는 곧 99%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급격한 건설물량 축소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건설 산업을 소홀히 하는 정부도 그렇게 정책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전언이다. 지역경제 침체와 일자리 감소로 인한 혼란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듯 대형 토목사업은 감소세지만 중소 건설물량에 대한 계획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생활SOC에 향후 3년 동안 30조원, 지방비를 포함하면 48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도시재생도 사회 곳곳에서 추진 중이다. 99%의 중소 건설사의 일감인 지역 건설물량이 한동안 확보된 셈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는 2017년 대선 직전 업계 현안을 담은 건의서를 각 정당에 배포하면서 “생활SOC를 늘려야 지역소재 중소전문건설업체의 사업 기회가 확대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 최근 정부는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안전강화 종합대책’을 통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노후 기반시설 관리에 연평균 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교통 안전시설의 현대화, 방재시설 관리 강화, 노후관로 교체, 지하구 재난대응 강화  등 사업을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민간 건설시장의 변화로는 리모델링 시장의 확대가 눈에 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시행, 안전진단 강화 등 재건축사업에 대한 규제 강화로 준공 15년 이상 단지들이 최근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도시정비업체에 따르면, 서울과 1기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 중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결정한 곳은 39개 단지고 준비 중인 단지도 약 30여곳이다. 내력벽 철거나 수직증축에 따른 기초 보강 등 기술제도적으로 극복해야 할 사항이 있지만 경제성과 삶의 질 측면에서 향후 주민들의 선택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규모 건축시장의 변화도 주목해볼만 하다. 소규모 건축시장 규모는 연간 약 1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시장은 협소주택 등 소규모 주택의 선호도 증가, 장소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 노후 건축물을 활용한 도시재생 확대 등의 영향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따르면, 소규모 건축시장은 건축주가 직접시공으로 건축허가를 받는 건수가 63.9%(2017년 기준)에 달했다. 하지만 대부분 무자격업체에게 도급을 주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한 시공품질과 하자 문제 등이 빈번히 발생했다. 향후 건설산업 혁신방안이 시행돼 건설업 등록기준 자본금이 낮아지고 업역 폐지로 전문건설사가 향후 이 시장에 뛰어든다면 경쟁이 늘면서 투명한 시장으로 바뀔 가능성이 점쳐진다.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CEO는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산업을 파괴한다. 엄밀히 말하면 산업과 사회 생태계 전체가 재편되는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국토교통부 건설혁신TF에 참여하고 있는 경실련 신영철 국책사업단장 역시 “경쟁력이 없는 건설사 상당수는 향후 자연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우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각종 지표도 건설기업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에 기회를 잡는 기업은 있어왔다. 변화하는 건설시장에 대응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더 높은 도약을 이뤄야 할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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