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물량 줄테니 단가 깎자” “일단 공사 후 추후 정산하자”

# 수도권 소재 전문건설업체인 ㄱ사는 B종합건설업체의 아파트 공사현장에 참여했다가 고통을 겪고 있다. B사가 물량이 많은 것처럼 허위로 계약을 유도해 단가를 20%가량 낮춰 계약했지만 계약 후 돌연 물량을 축소하고 할인율은 그대로 유지해 줄 것을 요구해 피해를 입었다.

# 또 다른 전문건설업체인 ㄴ사는 공사물량이 나오지 않았으니 우선 대략적으로 금액을 산정해 계약하고 추후 설계변경을 통해 정산하자는 종합건설업체 C사에게 속아 계약을 체결했다가 추가 비용을 받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공사물량을 이용한 종합건설업체들의 갑질이 갈수록 지능화·고도화되면서 하도급업체들의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피해업체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종합업체들이 최근 가장 많이 쓰는 물량 갑질 유형은 내역물량을 부풀려 하도급 단가를 낮춘 후 공사가 시작되면 물량을 대폭 줄여 하도급업체들의 이익을 본인들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1000원어치의 물건을 납품할 때 약속받은 할인율을 400원어치를 납품하면서도 유지해 달라는 식의 상도의에 어긋나는 요구인 셈이다.

하지만 대형업체의 협력사 지위에 있고, 이미 공사 착수 준비를 마친 하도급업체들은 쉽게 공사를 타절하거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어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게 피해 업체들의 설명이다.

ㄱ사 관계자는 “설계변경 당시 협력사 지위와 투입비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공사를 타절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후회가 크다”고 호소했다.

업체들은 또 물량산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적은 금액으로 우선 계약을 유도한 후 추후 보전을 약속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방법으로 부당이익을 챙기는 고전적인 방식의 갑질 사례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공사 준공 기일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며 하도급업체를 공사에 선 투입시킨 후 변경금액이 커지면 이를 떠넘기는 식이다.

ㄴ사 관계자는 “공사를 멈추면 정산대금을 못준다는 말에 서면요구·타절 등의 대처를 못하고 고민만 하다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량을 통한 각종 갑질을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 보니 종합업체들이 문제의식 없이 이를 관행처럼 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금지’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벌은 일부 나오고 있지만 법적으로 물량을 이용한 갑질이 위법하다는 명문화된 조항이 없어 갑질을 사전에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피해가 발생한 후 처벌하는 현재 법 시스템으로는 물량을 이용한 갑질을 막을 수 없다”며 “정부와 국회 차원의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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