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하도급계약서 쓰고 ‘분쟁중재 항목’ 넣어라

최근 해외건설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면서 제3국에서 행해지는 종합업체들의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하도급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당하고도 법무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면서 갑질이 상습화되고 있어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을 만나 하도급업체가 실제로 검토해 볼 수 있는 갑질 피해 예방 방법과 대응방안에 대해 알아봤다.

◇계약시 중재항목 삽입해야=계약을 할 때 ‘분쟁시 국제중재원이나 대한상사중재원 등에서 중재를 실시한다’는 문구를 담으라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비록 하도급업체 지위상 이를 요구하기 힘들고, 계약서에 이를 어렵게 포함시킨다고 해도 당사자가 중재를 끝까지 거부할 경우 큰 효과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전에 갑질을 예방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해외현장의 경우 다른 현지 업체와의 계약사항과 동일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 중재 항목을 삽입하는 게 국내보다 수월할 수 있는 만큼 알고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양호 (사)건설원가연구원 원장은 “만약 중재 항목은 넣었지만 현지 업체와 동일하게 영국·싱가포르 등 국제중재원으로 가는 것으로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면 원청과 대화를 통해 중재 소재지를 국내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게 법무능력이 부족한 하도급업체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해외 계약법 숙지사항과 분쟁해결 능력이 원사업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국내 하도급사가 분쟁 발생시 잉글랜드 앤 웨일스 법을 숙지해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쟁의 해결 또한 해외에서 이뤄져야 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며 “따라서 준거법이 대한민국법이 아닌 해외법이고, 분쟁해결 소재지가 해외라고 약정했다면, 준거법 규정을 바꾸는 것은 어렵더라도 분쟁해결 소재지를 국내로 바꾸도록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하도급업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건설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적극 활용=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1월 해외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불공정 갑질 근절을 위해 해외건설 표준하도급계약서를 개정했다.

해외현장에서의 하도급업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에 현지법인으로 공사에 참여한 경우 하도급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국내에서 민사 소송 제기도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도록 한 것이 개정의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외건설공사는 사적계약이 대부분인 만큼 표준하도급계약서를 그대로 준용하도록 강제성을 부여할 순 없다”며 “하도급업체가 표준계약서를 숙지하고 이를 원청에 건의하는 등 적극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전문기구 활용도 방법=하도급업체들을 대상으로 시효가 지났거나 국내법 적용이 안 되는 복잡한 문제를 중재해 주는 민간기구들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가 불가능한 사건이나 민사소송 제기가 어려운 사건들을 주로 맡아서 중재 등을 해주는 기구로 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했다.

이경만 한국공정거래평가원장은 “법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고통 받는 약자들과 또 이러한 사건에 휘말린 당사자들을 위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사회적 합의 프로세스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국공정거래평가원 같은 기구들이 생기고 있고 찾는 업체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현실적인 대처방안은 민사소송=해외 공사에서 피해를 입었는데 국내법 적용이 힘든 경우 실제로 할 수 있는 조치는 민사소송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나 공정위는 행정기관이라서 행정요건을 따져 처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황보윤 종합법률사무소 공정 대표변호사는 “법원은 행정기관과 달리 행정적인 요건을 크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며 “민사로 손해를 입은 공사대금을 청구하고, 이와 함께 하도급법을 끌고 들어와 불법행위를 소명하는 두 가지 건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업체차원 대응엔 한계 커…법 개정 시급=건설산업기본법과 하도급법 등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해외법인이라고 해도 실질적으로 국내업체인 경우 법이 적용되도록 각 법의 적용범위를 조정해 하도급업체의 보호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2006년 이후부터 해외건설 공사가 대폭 늘어나면서 이같은 방법으로 법 개정도 함께 진행됐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그동안 해야 할 법체계 마련을 하지 못한 것인 만큼 정부와 국회가 신속히 입법적 결단을 내리고 법 개정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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