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오전, 기자는 ‘6세 유튜버 보람이 가족회사, 95억 청담동 빌딩 매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온라인에 먼저 띄운 이 기사는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일주일 넘게 확대 재생산됐다. 이는 △돈(매달 40억원 가까운 수익) △교육(6세 미취학 아동이 주인공) △부동산(90억원 청담동 빌딩 매입)이라는 휘발성 강한 3대 관심사가 얽혀 있기 때문이리라.

보람양 가족의 성공 스토리는 평범해서 특별하다. 중산층 구축 아파트를 배경으로, 우리 곁에 살고 있을 법한 보통 가족이, 누군가 흔히 먹고 쓰는 소품을 가지고 영상을 찍었다. 처음엔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콘텐츠가 유튜브에서 수천만 명에게 구독되고 수백억원을 벌게 됐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보람양 가족이 지난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95억원짜리 빌딩을 사들인 것도 지극히 특별하면서 평범한 사건이다. 부모에게 딱히 물려받은 것 없는 30대 가장이 가족회사를 세워 강남빌딩을 산다는 건 분명 희귀한 사례다. 하지만 갑자기 떼돈을 벌게 되면 강남 아파트나 강남 빌딩에 돈을 묻어야 한다는 생각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가지는 보편적인 컨센서스다.

강남불패 신화 속에 진행돼온 강남 빌딩의 손바뀜 역사는 한국 경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축소판과 같다. 1970년대 영동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강남 상업용지는 당시 정부정책에 접근 가능했던 소수 권력층과 재벌들이 독식했다. 강남 노른자위에 얼마나 땅을 사두었는지는 웬만한 기업들에게 자신의 본업보다도 중요한 비즈니스로 판명됐다.

돈 많은 개인이 꼬마빌딩으로 불리는 소규모 상업건물에 본격 투자한 지는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의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바뀌면서 경쟁에서 도태된 제조업체들은 회사를 정리해 명동과 강남 빌딩을 사들였다. 이후 유명 프로스포츠 선수들과 온라인에서 떠오른 ‘1타 강사’들도 꼬마빌딩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대에 창업해서 30대에 상장(기업공개)하고, 40대에 엑시트(기업매각)하는 IT 벤처창업가들이 강남빌딩의 핵심 수요층으로 부상했다. 이제는 보람패밀리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강남빌딩 투자계보를 잇고 있다. 사무실 용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보인다. 빌딩업계에선 개인회사 규모의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수백억원 현금을 들고 강남빌딩을 쇼핑하러 다닌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문제는 깔때기처럼 강남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더 공고해지고 대중화되어간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업에서 지속적으로 돈 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수천억대 IT콘텐츠 기업을 일군 30대 창업자 A씨는 “안그래도 하루하루 급변하는 정글 속에서 경쟁하는데 지금 이 나라는 기업 발목만 잡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업 안했다”고 털어놨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에 흘러다니는 1000조원의 유동자금 수압은 더 높아지고 있다. 규제를 풀고 기업가들의 기를 살려줘야 돈이 산업과 증시로 흘러들 수 있다. 그런 정책대전환이 없다면 강남빌딩을 정점으로 하는 부동산 수요는 꺼질 수 없다. 분양가 상한제 같은 하수카드만 만지작거리고 있다간 어마어마한 돈의 압력에 둑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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