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칼럼] 공든탑 무너뜨리는 '오너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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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칼럼] 공든탑 무너뜨리는 '오너리스크'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 승인 2019.08.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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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야기다. 중소·중견기업 두어군데를 다니다 그만두고 온라인쇼핑몰에서 자기사업을 하는 ㄱ씨의 아내를 만났다. 남편이 재직했던 회사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강소기업들. 그런데 왜 사표를 냈는지 물어봤다. 답은 간명했다. “더는 다닐 수 없을 만큼 역겨웠다”고.

그의 남편이 다녔던 두 회사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너가 왕과 같은 회사였다고 한다. 회식 때 오너를 둘러싼 가신들이 벌이는 충성경쟁은 남편의 상식선을 넘었다고 했다. 연말 송년회 때는 남녀 직원들이 ‘회장님 만수무강하시라’는 내용의 공연을 오너 면전에서 스스럼없이 하는데 옆에 앉아서 보기가 민망하더란다. 수틀렸을 경우 오너가 내뱉는 거친 언사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직장생활이 원래 그런거라며 애써 스스로 달래며 버텨보려 했지만 남편은 이대로 있으면 정신병이 걸릴 것 같다며 결국 2년을 못 넘기고 두 회사를 나왔다.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첫 반응은 “에이 아직도 그런데가 어딨느냐”였다. 그녀가 과장을 했거나 혹은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과장해서 말을 전달했을 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달 지나지 않아 중소·중견기업 사장들의 막말뉴스가 잇달아 터져나왔다. 그중 한 곳은 ㄱ씨의 아내가 말한 회사였다.

중견기업인 한국콜마의 윤동한 전 회장이 최근 사퇴했다. 한일문제와 관련해 한국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 담긴 영상을 직원들에게 강제로 시청하게 한 것이 원인이 됐다. 불쾌감을 느낀 한 직원이 익명의 직장인 사이트인 블라인드에 사안을 폭로했다. 화난 여론이 불매운동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주가가 폭락하자 70대 노 회장은 결국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오너도 정치적·역사적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 의중이 강하게 담긴 동영상을 직원 월례회의에 공개적으로 트는 것은 대기업이라면 상상하기 힘들다.

최근 들어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이 설화에 휘말리는 일이 많아졌다. 안하던 말들을 갑자기 했다기보다 사내에만 공유되던 발언들이 블라인드,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밖으로 새나가면서 논란이 된 사례가 많아 보인다. 걸러지지 않고 공개되는 오너의 언행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때론 대중들에게 충격을 줬다.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언행은 왜 직선적이고 거칠 경우가 많을까. 기업을 사적 소유물로 생각하는 오너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는 된다. 매달 직원들에게 주는 월급은 자신이 발품을 팔아 마련한 돈이다. 맨손으로 시작해 온갖 난간을 헤치며 여기까지 온 것도 자신이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군 조직이니 내것처럼 보이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임직원들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오너는 가부장제 하의 가장을 자처하고 있다. 아예 직원을 부속품으로 여기는 불량오너들도 있다. 내가 돈을 줬으니 내맘대로 부리겠다는 부류다. 이런 오너들이 직원들을 대하는 말과 행동에는 품위를 찾아보기 힘들다. 중소·중견기업의 오너리스크는 이렇게 시작된다.

건설업계라고 다를까? 아닐 꺼다. 중소·중견기업이 유독 많은 업종이 건설이다. 현장일이 많다보니 가뜩이나 말과 행동이 거칠다. 상명하복의 분위기도 여전하다. 모르긴 하되 건설기업 오너의 발언이 날 것 그대로 공개되면 문 닫아야 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닐 수도 있다. 요즘처럼 SNS가 활성화 돼서는 사내발언이 언제 외부로 뛰쳐나올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갑질’로 인식될 때다. 인사권을 지닌 오너가 직원들에게 부적절하게 해대는 언행은 곧잘 오너의 갑질로 프레임 된다.

중소·중견기업을 쳐다보는 눈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오너들은 자신의 언행을 다잡아볼 필요가 있다. 평생을 바쳐 일군 기업을 세치 혀 때문에 리스크에 빠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윤동한 전 회장이 창업 29년 만에 자진해서 한국콜마 경영에서 물러난 것은 그래서다. 소비자 불매운동의 타킷이 돼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없다. 설사 BtoB(기업과의 거래룰 주로 하는 기업)라도 말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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