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면서 국내 소재·부품 산업의 중요성이 연일 부각되고 있다. 우리 기업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본격화되자 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완성품 제조업계가 곧바로 소재·부품 조달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요 소재·부품의 국산화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육성과 대·중소기업 간 긴밀한 협력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그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 협력해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에 성공한 사례를 매년 공정거래 협약평가에 반영하고 상생협력 우수사례로도 적극 홍보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일부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유용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국내 중소기업의 혁신 의욕을 꺾고 성장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중소기업의 3.4%가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 제공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었고, 그 중 그러한 요구를 받으면서 기술자료요구서를 교부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유용은 중소기업의 생산 기반을 빼앗고 기술 개발 유인 자체를 저해하는 행위로서, 국내 소재·부품 산업의 성장을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많은 비용을 들이고 노력을 통해 개발해 낸 자사의 기술을 빼앗긴 중소기업으로서는 더 이상 신기술 연구·개발을 위해 노력할 동기가 없는 것이다. 이는 중소기업의 자생력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혁신성장 동력을 잠식하는 등 경제 전반에 큰 폐해를 유발한다.

현 정부도 기술유용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술유용 근절을 대·중소기업 간 거래 공정화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공정위는 지난 2017년 9월 기술유용 근절 대책을 수립·발표하고, 그 후속조치 또한 차질 없이 이행해왔다.

구체적으로는, 기술유용사건 전담팀을 신설하고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선제적·적극적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두산인프라코어, 현대건설기계 등의 기술유용행위를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고발 조치했다. 또한, 기술자료 유출을 하도급법상 위법행위로 명시하고,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조사 시효를 3년에서 7년으로 연장했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 시장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공정위가 실시한 하도급분야 서면실태조사 결과, 원사업자로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받았다고 응답한 하도급업체의 비율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시장의 모든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공정위는 앞으로도 기술유용 근절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서면실태조사 결과 분석을 통해 법위반 혐의가 높게 나타난 업종에 대해 집중 점검을 실시하고,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상향 조정하는 등 추가적인 제도 개선 과제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이번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국내 제조업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과 함께 동반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유용과 같은 불공정행위가 발생해서는 안 되며, 정부의 효과적인 지원 정책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공정한 거래관행이 확립된 시장을 바탕으로 우리의 완제품뿐 아니라 소재·부품 산업까지 세계적인 수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경제주체 모두가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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