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건설업체 K사를 운영하던 김을수(가명) 사장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대기업 건설업체 H사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고 고양, 파주 등 아파트 철근콘크리트공사를 했다. 당시 김 사장은 발주처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였기에 대금 미지급의 하도급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상상조차 않고 착공했다.

막상 공사에 들어가 보니 K사는 철콘공사 이외에도 면허가 없는 미장과 단열공사까지 구두지시에 의해 맡게 됐으며, H사에서 책임져야 할 산재사고 비용과 안전관리비마저 부담했다. 또한 계약서에 적시된 물량이 실제 공사물량보다 훨씬 축소돼 있었다. 당연히 설계변경사항이다. 구두로 추후 정산하겠다던 계약서도 없이 인근에 위치한 신규현장까지 공사를 추가 완료했다. 그러나 정당한 설계변경에 의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그 결과 김 사장이 운영하던 K사는 52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고 폐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갑질이나 불공정거래가 계속 일어나고, 건실한 전문기업이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에 하도급자로 참여했다가 폐업에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원도급자인 H사의 우월적 지위에 의한 불의한 짓에서 발생된 것이다.

하도급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하도급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작년부터 정의당에 집중된 수많은 갑질 고발이 왜 계속 발생할까? 그 이유는 하도급법이 갑질이 발생한 후 처리하는 사후처리 법안 성격이 강해 계약단계에서 피해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상위법인 건설산업기본법이나 국가·지방계약법의 법철학에서부터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계약관련법은 해외 선진국들의 법제정 원칙인 사전규제가 아니라 사후규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같은 법체계 오류를 바로잡는 것부터 시작해 나가야 한다.

만약 K사의 김 사장이 LH와 H사와의 계약내용을 알았다면 작업량을 정확히 알고 이에 근거한 공사대금을 청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업량을 알 수 없던 K사는 축소된 물량으로 기재된 계약서만 믿고 작업을 했고, 제때 설계변경을 받지 못해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추후 알게 됐지만 LH가 H사에 물가상승에 따른 공사대금 인상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K사는 이를 알지 못해 정당한 대금청구조차 하지 못했다. 또 현행 국가계약체계에서는 공사 중 원도급자의 하도급자에 대한 대금미지급, 부당 특약강요와 같은 하도급법 위반사항이 발생하더라도 발주처는 그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이는 하도급자의 기본권이나 저항권을 박탈하고 있는 현 국가·지방계약법이 원도급자의 무소불위의 행태에 발주자는 아예 참여자의 억울한 피해를 구제할 권한이나 책임조차 배제돼 있는 문제에서 찾아야 된다고 본다.

이에 따라 선진국처럼 하도급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전규제가 가능하도록 국가계약법 등의 상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 집행위원장·세종시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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