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행정안전부가 발의해 국회에 계류중인 ‘행정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시대를 역행하는 규제 만능적 발상이다. 이 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의예정이었으나 소위 자체가 무산돼 불씨를 남겨놓고 있다. 정책 수요자 대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에 인력과 예산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입법 및 행정효율을 위해서라도 이참에 이 법안은 접는 것이 좋다. 법안 발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됐으니 별도의 개선조치들을 시행해 나가면 될 일이다.

‘행정사무 위탁’이란 모든 국가사무를 정부부처나 기관이 도맡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한테 맡기는 것이 아니다. 법령(규칙포함)에 근거(법정위탁)하거나 행정기관(중앙부처) 고시에 의하거나(지정위탁), 계약에 의한(계약위탁) 단체, 법인 등이 그 수탁기관이다. 건설업계로 보면 대한전문건설협회와 대한건설협회 등 건설단체들이 수행하고 있는 시공능력평가나 건설업 교육사업, 각종 증명서 발급 같은 사무다. 정부 위탁업무인 만큼 관련 부처인 국토교통부 등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식의 민간위탁 업무가 전체 37개 부처 1700여개에 이른다.

행안부가 2017년 4월 발의한 법안은 각 부처가 관할하는 민간위탁 중 지정위탁과 계약위탁을 앞으로는 행안부가 꿰차고 총괄 관리·감독하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민간위탁의 무분별한 운영을 방지하고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법안은 이를 위해 행안부 내 민간위탁심의위원회를 비롯, 각 부처에 민간위탁운영위원회를 설치해 수탁기관을 입찰로 공개모집(법정위탁은 제외)하고 위탁기관의 관리·감독 결과를 연 1회 행안부 장관에게 제출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행안부는 또 종합평가 후 시정권고, 소속 공무원 또는 임직원에 대해 징계처분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행정사무 민간위탁업무 권한을 행안부에 집중시켜 중앙집권적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민간위탁 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중복규제이자 옥상옥 규제이다.

특히 수탁기관을 공개모집하는 것은 기관별 공익성과 전문성, 특화성 등을 반영 못하는 비현실적이자 행정편의주의적 정책이다. 앞서 언급한 시공능력평가만 하더라도 적어도 3년, 길게는 10년 이상 누적자료가 필요하다. 업무연속성과 공사현장 등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전건협 등 건설단체들이 법안 발의 직후부터 공식적인 반대의견을 냈고 지난달 23일에는 국회에 반대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위탁사무에 부실이나 부조리가 물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민생 이권과 관련된 특정 조직의 일이다. 그 일부 때문에 공적 위탁업무를 체계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는 전체 건실한 조직까지 흔들어 이중 삼중 통제하겠다는 것은 분권행정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정책수립과 집행에서 제일 먼저 고려할 사항은 수요자가 과연 원하는 것이냐이다. 국민이 바라지도 않고, 관련 정책이행자들이 모두 반대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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