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스마트시티의 ‘파르마콘’
상태바
[논단] 스마트시티의 ‘파르마콘’
  • 원용진 교수
  • 승인 2019.09.09 0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약의 복용은 까치발로 폭 좁은 담을 타는 꼴과 유사하다. 아픈 몸을 달래줄 수도 있지만 오남용, 복용 타이밍 탓에 성하던 몸을 망칠 수도 있다. 약의 영어 표기 파르마콘(Pharmacon)은 ‘약’과 ‘독’을 동시에 의미하고 있다. 플라톤은 인간이 발명한 문자를 파르마콘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자가 인간 기억을 연장해주고 휘발성 강한 말을 보완하지만 오독을 낳을 수도 있고, 인간의 기억 능력을 죽이는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며 파르마콘으로 불렀다. ‘약’ ‘파르마콘’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일은 늘 교조적일 수밖에 없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용어다. 낡은 모든 것을 털고 새로움에만 집착하는 가벼움을 경계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파르마콘을 건설계에 전하는 데는 최근 스마트시티 담론의 방향이 삐뚤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스마트시티, 스마트도시는 지난 2년여 간의 건설, 도시, 건축 이슈의 맨 앞자리를 차지해 왔다. 관련법이 만들어졌고 시범 사업을 행하고 있으며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라고 하니 관련 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미 2008년 9월 세계 최초로 ‘u시티건설지원법’ 열풍도 있었던 터라 노력이 강화되는 것으로 받아들인 탓에 무수한 담론이 이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새로운 경향성에 뒤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해해야 하고 그를 폄훼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굳이 파르마콘을 갖다 대며 그 방향성에 말을 보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스마트시티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보자. 스마트시티는 건설업계가 지어놓은 결과물만을 뜻하진 않는다. 그 결과물을 생성하기까지의 가치사슬, 전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기획, 설계, 구매 조달, 시공 감리, 유지 보수가 스마트해지는 과정을 포괄한다는 말이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스마트시티에서 인터페이스를 벌일 숨겨진 주체인 사용자의 욕망, 의견을 수렴하는 일도 포함해야 한다. 그들의 현재 일상에서 생길 불편함을 넘어선 새로운 일상을 담아내는 인류학적 고려도 담겨져야 한다. 그래서 스마트시티에는 IT, 4차 산업혁명, 커뮤니케이션 등의 말랑말랑한 용어가 따라붙고, 건설업이 신체 개조를 해야 할 만큼의 혁신 요청이 덧붙여진다. 이는 스마트시티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건설의 스마트한 혁신, 사용자를 향한 스마트한 경청까지 담는 산업 혁명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파르마콘을 끌어온 김에 ‘독’ 이야기도 끌어와 보자. ‘독수독과’. 독 먹은 나무엔 독 있는 열매가 열린다는 말이다. 스마트한 건설업이 선행되지 않고선 스마트시티가 결과 될 수 있다는 비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스마트시티 담론에서 결과물인 스마트시티 논의와 그 도시 안에서 벌어질 스마트 일상의 풍경에 대한 논의는 많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꿈같은 결과물로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지난 9월초에 열린 스마트시티 박람회(WSCE 2019)가 그 좋은 예다. 정부 부처 주도의 박람회는 스마트 에너지, 스마트 정부, 스마트 인프라, 스마트 모빌리티, 스마트 빌딩, 스마트 홈, 스마트 서비스, 스마트 센서 등 주로 사용자 인터페이스 중심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아쉽게도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할 건설업계의 스마트함에 대한 말은 과소하다. 건설업계의 스마트화, 그 가치사슬 과정의 스마트화라는 혁신 단계에 대한 관심은 전체 소개 문구에서 찾기가 힘들다.

2018년 12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한국 건설업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보고에 따르면 한국 건설업의 국제 경쟁력 2018년 순위는 조사 대상 20개국 중 12위라 한다. 2016년 6위, 2017년 9위로 매년 3단계씩 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3년간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진 첫째 원인으로 시공과 설계 분야에서 해외 매출 성장률이 ?20%대를 기록한 탓이라 한다. 시공 부문의 해외 매출 성장률이 뒷걸음 친 것을 가장 큰 요인으로 보았다. 건설업의 스마트화가 중요 탈출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스마트한 시티 프로젝트에서 그 결과물만을 욕망하게 하는 담론은 이제 멈춰야 한다. 그 결과물을 위해 필요한 가치 사슬을 점검하고 기초 체력을 단련하는데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앞선 건설기술연구원의 조사에서 미국이 1위를 차지한 데는 미국이 ICT 분야 약진과 무관하지 않음에 주목해야 한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약이 되기 위해서는 건설업의 체질 변화에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스마트시티의 선례를 만드는 일 만큼이나 스마트 건설, 건축을 해낼 가치사슬 모델을 더 만들고, 선진 업계를 모델링하는 일이 소중하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좁은 폭의 담 위에서 위험 쪽으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 스마트 건축과 스마트 가치사슬 실행을 구체화하고 지원하며 담론을 형성해가는 스마트 건설 행정을 기대한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원용진 교수] koscaj@kosca.or.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