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혜선 국회의원
◇추혜선 국회의원

지난 3월, 건설 현장 하도급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기 위해 업계 관계자분들께 간담회 참석을 요청드렸다. 협회 등의 기관과 실제 현장의 건설업체들 반응이 너무 달라 당혹스러웠다. 전문건설업을 하는 기업인들은 참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암담했다.

“제가 간담회에 참석한 것을 대형 발주사가 알게 되면 일이 끊기고 저희는 길바닥에 주저앉아야 합니다. 신경써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죄송합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일을 하고 건물을 지어올려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주역은 이들인데, 말하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을’들의 현실이구나 느껴졌다.

그래도 이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일념으로 현수막 한 장 걸지 못하고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비공개로 건설 하도급업체 분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기대감과 냉소가 공존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뭔가 하나라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그동안 국회와 정부에 숱하게 얘길 했지만, 만나는 자리에서는 다 될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아니더라”는 마음을 모두 내비쳤다.

간담회 자리에서 많은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성과를 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열린 국회 상임위(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이 분들의 의견을 전하면서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을 강하게 촉구했다.

“건설현장에서 하도급대금을 못 받아 부도가 나거나 경영이 어려워지는 전문건설업체들이 많은데, 이 중소기업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하도급 지급보증서입니다. 하지만 하도급법 시행령 상 지급보증서 면제 사유가 너무 폭넓게 규정돼 있어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합니다.”

개정해야 할 사항으로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원사업자의 신용등급에 따른 면제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것. 이는 건설산업기본법과도 불일치해 법체계 상으로도 개정이 필요하다. A- 등급에서 CCC등급으로 급락한 대형 발주사의 사례 등을 통해 대형 발주사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하지는 않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확인됐다.

둘째, 직불 합의를 하는 경우에 계약체결일로부터 30일 이내, 즉 지급보증서 발행 기한 내에 합의하는 경우에만 지급보증 의무를 면제하도록 할 것. 지급보증서를 발행하지 않고 있다가 대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직불 합의를 해놓고 지급 보증을 회피하는 일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셋째, 지급보증서 발행기관이 보증서 사본을 수급사업자에게도 교부해야 한다. 발주사가 지급보증서를 발행했는지, 그 내용은 어떤지를 몰라서 하도급대금 지급이 미뤄지는데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어느 전문건설업체 사장님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상조 당시 위원장은 즉각적인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을 약속했다. 그 후로 공정위와 꾸준히 협의했다. 전문건설업체들의 절박한 요구임을 강조하며 빨리 추진해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그 결과 위의 주문사항 중 첫째(신용등급에 따른 면제조항 삭제)와 둘째(직불합의 기한 규정) 내용을 담는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0일 입법예고됐다. 셋째(지급보증서 교부) 사항은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어서 법률적 근거 없이 시행령에 조항을 신설하기 어렵다는 공정위의 의견에 따라, 이 내용을 담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9월 중에 발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최소한 일해주고 돈 떼이는 일은 없도록 법적 안전장치가 튼튼해야 한다. 중소기업 경영자들만이 아니라 거기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2차‧3차 협력업체들까지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공정위가 해당 시행령의 개정을 추진했지만 대기업 건설사들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을’들은 당장 일거리가 떨어져 나갈까봐 눈물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하며 개정요구를 위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숨죽여 지내는 ‘을’의 눈물은 방치되었던 것이 현실이다.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의 첫발을 내딛었다. ‘을’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했으니 됐다며 멈출 수 없다. 관련 법 개정과 제도개선을 꾸준히 해나가면서 ‘을’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갑’이 마음대로 주도하는 반시장적인 갑질 경제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들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9일 임명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갑질 피해자들에게는 ‘공정거래위원장이 우리의 사건을 안다’는 한마디가 그들을 살게 만드는 힘입니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의 답변에는 논문 같은 활자와 기업밖에 없습니다. 왜 ‘사람’이 없습니까?” 늘 스스로에게도 물음을 던지며 되새기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운동화 끈을 묶고 ‘을’들을 만나러, ‘사람’을 만나러 현장으로 달려 나간다. 정치에 사람을 담고, 정치를 통해 ‘을’들의 눈물을 닦아내기 위한 정치인의 소명을 묵묵히 실천할 것이다. /정의당 (정무위원회, 비례대표, 정의당 안양시동안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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