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부터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 콜럼비아에 위치한 미주리대에서 연수 중이다. 낯선 곳에 터잡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건축물이었다. 400 ~500년된 유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곳에는 100~200년된 건축물이 풍성했다.

미시시피강과 미주리강을 끼고 있는 미주리주는 18세기 개척시대 서부로 가는 길목이어서 상대적으로 역사적·문학적·정치적 유산이 많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은 이곳에서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을 썼다. 인접한 캔자스 주는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의 무대다. 미국독립선언문을 작성한 3대 대통령 제퍼슨의 흔적도 곳곳에 있다. 미주리주의 주도는 제퍼슨시티다. 

미국은 다른 어느 곳보다 풍성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고작 200년이다. 반만년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인의 눈에 미국 역사는 짐짓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100년 뒤에도 한국인들이 이같은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는지 자신할 수 없다. 역사를 보존하고, 축적해가는 미국인들의 의지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미주리대의 상징물은 13m 높이의 돌기둥 6개다. 1840년 이 대학에 첫 건축된 건물을 받치던 기둥들인데 1892년 화재로 목조건물은 모두 불타고 남은 잔해다. 미주리사람들은 이를 폐기하지 않고 상징물로 만들었다. 

미주리대학에서 도보로 10분을 걸어가면 세인트폴 A.M.E 교회를 만난다. 붉은 벽돌로 지은 단층짜리 흑인감리교회로 교회명과 함께 ‘1891’이 새겨져 있다. 국가문화재로 지정됐다고 했다. 그 옆에는 1936년 조성됐다는 더글라스 공원이 있다. 흑인들을 위한 물놀이장을 갖춘 시설로, 조성 당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설명문이 붙어있다.

콜롬비아 도심을 빠져나가는 왕복2차선 도로 양옆으로 고가들이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올 만한 그런 집이다. 도로변 잔디밭에는 ‘역사적인 브로드웨이를 보존하자(Save the historic Broadway)’라는 푯말이 서 있다. 메디컬센터와 사무실을 짓기 위해 100년된 집들을 허물려는 시의 개발계획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이다. 이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고가보존운동을 벌이고 있다.

100년이 더 지나면 100살은 200살로, 200살은 300살이 된다. 미국인들의 성정으로 볼 때 미국의 건축물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즐기며 천수를 누릴게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건축물들도 제 명을 다 누릴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100년 뒤 상당수의 건축물은 허물어지고 재건축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상당수 거리도 뒤엎어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 같다. 건축물이 부실해서 헐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이라도 돈이 된다면 재건축 운명을 비켜나가기 어려운 것이 한국이다.

100년 가는 장수명 아파트가 세종에 들어섰다는 소식이다. 일반 공동주택에 비해 더 두꺼운 철근을 쓰고, 콘크리트의 강도를 높였다고 한다. 유지보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배관·배선도 특별하게 설계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튼튼히 짓더라도 건축물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없다면 완공 40년 뒤에는 재개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건축물을 100년 쓸 마음가짐이 됐을까.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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