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건설 하도급업계의 해묵은 애로 해소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움직임을 보여 하도급업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진작 추진했어야 할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면제제도 축소’ 입법예고와 눈가리고 아웅식이던 ‘하도급 서면실태조사’ 개선 방침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마침 지난 10일 문재인정부 2기 공정위원장인 조성욱 위원장 취임에 즈음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좋다는 이유(회사채 A0, 기업어음 A2+ 이상)로 하도대 지급보증을 면제해주는 제도는 그 자체로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로, 애초 왜 도입됐는지조차 불분명하다. 하도급업체의 계약이행보증과 원도급사의 지급보증은 상호주의가 원칙이고 상식이다. 계약이행보증은 받으면서 지급보증은 안 해주는 것은 갑질을 부추기는 일 밖에 안된다. 신용등급이 좋은 대기업이라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혹은 여러 가지 내·외부적 요인 등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 못하는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더욱이 신용등급 하락은 그것의 원인이 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미리 손을 쓸 수가 없다.

실제로 2017년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3곳의 신용등급이 A에서 A-로 하향 조정됐다. 또 2011년 12월 229개 하도급업체들과 464건, 888억원의 계약을 맺은 원도급 업체가 워크아웃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원도급업체가 부실화될 경우 하도급대금뿐만 아니라 자재·장비대금 및 건설근로자의 임금 체불까지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세계 금융위기 직후 국내 시공능력평가 100위 이내의 건설업체 중 20여 개 업체가 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하나의 원도급업체가 부도를 내면 평균 약 200개 하도급업체가 직접적 타격을 입고 약 1200억원의 피해를 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연유로 국토교통부는 이미 2014년 건설산업기본법의 관련 조항을 폐지했다. 그렇다면 공정위의 하도급법 시행령에서도 진작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 아닌가. 그런데도 지금까지 5년을 버텨온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바람직한 하도급 정책 입안 등을 위한 하도급 서면실태조사 역시 그동안 황당하게 운영돼온 측면이 있다. 이는 군대로 치면 일종의 소원수리(訴願受理)인 셈이다. 혹은 익명의 제보나 내부자 고발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원도급업체가  표본을 정하고 현장명까지 공개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불만·분쟁 소지가 있는 업체는 아예 처음부터 제외시키고, 해당 업체가 어디인지 알게 되는 조사·통계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결국 모두가 공정과 상생을 위한 일이다. 특히 신용등급에 따른 하도대 지급보증 면제를 폐지하는 이번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은 신임 조 위원장 체제의 1호 입법이라고 한다. 또다시 꺾이지 말고 입법까지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지난해 7월에도 이 내용이 포함된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 됐다가 종합건설업계의 거센 반발 등을 이유로 해당 조항이 슬그머니 빠져버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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