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의 자연과 스위스의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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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한국의 자연과 스위스의 자연
  • 이복남 교수
  • 승인 2019.10.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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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첫 스위스 방문으로 느낀 소감은 자연이 인간의 손에 다듬어졌다는 느낌이었다. 자연 그대로보다 국민의 편의를 위해 개조한 자연이라는 것이었다. 방치된 자연이 아니라 국민의 손으로 개조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살면서 느꼈던 방치된 자연과 너무 큰 대조였다. 미국 자연은 방치해도 스스로 치유될 수 있는 광활한 자연이지만 스위스는 그렇지 못하다.

최근 10일간 스위스를 돌아보면서 40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지만 첫 느낌 그대로다. 오히려 첫 방문 때보다 국민을 위한 자연개조가 더 많이 이뤄졌다. 국내 환경단체 주요 인사들이 스위스에 체류하면서 국민을 위한 자연개조가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에 권고하고 싶기도 했다.

1982년부터 제기돼 왔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가 최근 환경부 반대로 막바지에서 무산됐다. 환경단체들은 케이블카 설치가 자연환경 훼손으로 보존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환경보존이 주민과 국민 생활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이에 비해 스위스는 자연보존보다 개조를 통해 국민 생활 편의를 높이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판단한다. 스위스 국토의 60%는 산지다. 국내는 70%가 산지다. 연간 관광수입은 20조원으로 우리보다 13.3배 많다. 하지만 국가총생산액(GDP) 중 관광수입액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스위스 국민의 39%가 산지에 거주하지만 우리는 10%이하다. 우리나라의 산지가 살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스위스에 머무는 10일 동안 한 번도 교통체증을 경험하지 못했다. 스위스에는 산악교통으로 케이블카와 리프트, 급경사를 오르내리는 푸니쿨라 열차와 산악열차, 그리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도로 등 5종류가 있다. 푸니쿨라와 산악열차는 터널 속과 교량 위를 달린다. 교통체증이 없는 이유는 산지 거주민이 평소 차를 이용하기보다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이용하거나 산악열차가 출·퇴근은 물론 짐도 실어 나르기 때문에 굳이 자동차를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케이블카를 관광목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우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산악교통이 생활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국토 이용을 산지와 평지를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평지에 있는 마트에서 산 물건을 케이블카를 이용해 운반하는 것도 일상적이었다. 서비스 산업이 아닌 이상 제조공장은 거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동시에 국제기구나 글로벌 기업의 사무실 등도 평지에 있다. 상당수 근무자들은 산지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산지 교통 이용이 보편화돼 교통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체증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우리의 국토이용 정책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 산지를 산지로 남겨놓기보다 산악교통 개발을 통해 주거지를 확대하는 정책도 검토해 볼만하다. 굳이 평지에 대규모 신도시 개발만이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구의 고령화로 교통약자가 늘어난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을 도보로 걷게 하는 것은 교통 약자에겐 고통이다. 소득 증가와 함께 근무시간 제한은 자연스럽게 국민의 이동거리를 늘리고 이동 빈도 또한 증가시키게 만든다. 국민의 이동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위스보다 산지가 많은 우리가 스위스의 국토 활용 정책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에 설치된 케이블카·리프트 노선이 2480개다. 우리는 열 손가락 내외다. 스위스가 산악교통 개발로 자연환경이 훼손됐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산지교통 확산으로 국민과 관광객이 일상생활에서 고지대 서식하는 산양이나 식물과 접촉하는 기회를 더 넓혀주고 있음을 알게 됐다. 1962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서울 남산의 케이블카가 자연 환경을 훼손시켰다는 평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을 위한 환경 보호인지 국민을 위한 자연 개조인지 선택에서 스위스와 한국의 잣대가 다른 이유가 뭔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국민의 선택을 물어야 한다. 

불허 판정을 내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포함한 자연과 국토 이용에 대한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산악교통개발을 통해 거주민과 관광객의 이동 편의를 높이는 방안은 검토해 볼만 하다. 산지면적이 우리보다 적은 스위스가 국토 활용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를 도롱뇽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중단시켰던 목소리는 완공 후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자연 보존과 개조의 가치가 국민 삶의 질과 소득에 얼마만큼 더 기여하는지를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해야 한다. 환경부가 불허한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재고해 주기를 기대한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이복남 교수] bnlee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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