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과천서 8년 넘게 살아온 신혼부부 A씨(38세)는 한 달 전 전셋집 주인으로부터 ‘집을 빼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직장도 멀지 않고, 자녀 키우기에 안성맞춤이라 여겼던 곳이기에 전세금을 올리더라도 더 살 수 없냐고 집주인에게 부탁했다. 이에 집주인은 2년 전 전세금은 5억8000만원인데 7억원을 요구했다. 심지어 자신의 딸을 해당 집주소로 전입하는 게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A씨는 황당한 요구를 듣고 서둘러 주변 전세매물을 알아봤다. 그런데 과천 전체에 중소형아파트 전세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A씨는 “이렇게 전세를 구하는 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런 A씨의 사례는 이제 과천서 특별한 일이 아니다. 현장 취재 결과, 10월 중순 과천 신축 20평대 소형아파트 1194가구 중 전세 매물은 단 한 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과천 아파트 시장의 전세가 씨가 마른 셈이다.

과천의 전세품귀 대란은 정부 분양가 규제가 몰고 온 부작용 탓이다. 현재 아파트 청약시스템은 당해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에게 1순위 우선권을 주고 있다. 서울이나 성남, 광명, 하남 등 수도권 인기분양 단지는 당해지역 1순위에서 청약이 마감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천에선 2018년 이후 5개 청약단지 중 1순위 당해청약이 마감된 사례가 한 차례도 없었다.

과천의 인구 자체가 5만8000명으로 다른 수도권 도시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결국 과천에서 1년을 거주하면 ‘과천분양 로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에 따른 청약을 노리는 대기자들이 자신의 실수요와는 상관없이 ‘묻지마 과천 전입’을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 주 과천에서 만난 한 부동산 중개인은 “전세 있냐”고 물어보는 기자에게 “당해지역 청약 때문에 전세 구하냐”고 되물었다. 그 중개인은 “외부에서 전월세 보러 오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과천 청약을 염두에 두고 집을 구하고 있다”며 “원래 과천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전세금 폭등에 죽을 맛”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파트 전세대란은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 등 단독주택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과천시청은 올해 3월부터 주민등록 위장전입자 신고센터를 상시 운영하고 있다. 시청의 담당 팀장은 “실제로 위장전입 신고를 하기는 어렵지만 자기가 원하는 곳에 전입시켜달라고 폭언 폭행을 하는 민원인들이 상당하다”며 “주민등록만 옮기기 위해 다가구 주택의 지하방을 전월세로 잡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이런 사안은 실거주 의사가 없더라도 전입신고를 안 해줄 도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안 그래도 살기 좋은 과천이 왜 이렇게 살기 어려워졌나. 과천의 로또분양을 꿈꾸며 전셋집을 찾아보는 외지인들을 탓해야 하는 걸까. 이는 서울 재건축·재개발을 틀어막고, 분양가를 옥죄면서 핵심지 주택 공급을 틀어막은 정부 부동산 규제에 대한 시장의 자연스런 대응이다.

이런 전세대란은 과천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울 전세금도 6월 셋째 주 이후 17주 연속 오르고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부동산 규제인지 곰곰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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