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사람들이 전하는 전문건설 - 하도급사 현장소장들에게 듣다

“우리(하도급사) 직원에게 채용을 미끼로 원청에 유리한 대로 일하도록 간첩질을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정말 이 업을 때려치우고 싶어요”
“계약에서부터 보고 법무능력이 약해 보인다 싶으면 대금지급보다 분쟁으로 끌고가는 원청들이 수두룩해요. 모르면 당하는 정글 같은 곳이 여기에요” 
“갑을 구조가 반백년 반복되면서 알아서 하도급사들이 엎드리게 된 게 가장 문제에요. ‘난 안 그래’라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입니다”
“모두가 각자 을이라 생각하고 서로를 대하면 하도급 갑질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건설현장에 그런 날이 오진 않겠지만…”
10년 이상 하도급업체 소속으로 건설현장을 누비고 있는 현장소장들의 이야기다. 현장소장 5인을 만나 그동안 어디에서도 드러내지 못한 그들만의 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건설현장에서 오래 근무하시면서 많은 일들을 겪으셨을 텐데요. 최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는 게 뭔가요?

소장 A “원청 직원 간의 소통부재로 인한 피해가 최근 들어 늘고 있어요. 크게는 현장팀과 본사 공무팀 간의 의견충돌이 있고요. 현장 내에서는 공무 대리와 공무 과장, 현장소장 간 불통으로 제각각 지시를 내려 하도급사의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장 B “현장팀에서 공사 대리, 공사 과장 등의 목소리가 각각 나오면 하도급사는 헤맬 수밖에 없어요. 하자는 대로 안 할 수도 없고, 무작정 따르면 다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답답한 날이 많아요”

소장 C “현장과 공무팀 간 미묘한 신경전도 심해요. 그래서 현장팀 말만 듣고 일해서는 안 돼요. 시키는 대로 일 했는데 공무에서는 내역대로, 정해진 기성만 준다고 나오면 우리만 골치 아프거든요. 현장팀 힘이 약해지면서 공사도 더뎌지고 현장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소장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과거와 달리진 현장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과거에는 현장에서 결정한 대로 공무팀에서 대금을 집행만 했다면 최근에는 돈을 지급하는 부서에서 판단해 주지 않은 공사를 현장팀만 믿고 했다가는 하도급사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전결로도 처리할 만큼 힘이 있던 원청 현장소장들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공무에도 밀릴 만큼 입지가 크게 줄었다는 게 하도급 소장들의 주장이다.

- 아무리 대비해도 피할 수 없는 갑질 이 존재할 거 같은데요?

소장 D “위에서 해 온 말의 연장선이기도 한데 공무에서 요구해 오면 하도급사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들어요. 예를 들면 기성지급을 계약서에는 60일 단위, 현금으로 주기로 해놓고 막상 기일이 되면 한 달만 미루자, 이번에만 어음으로 좀 받아라 등등의 요구를 해오면 들어줄 수밖에 없죠”

소장 E “계약조건에 ‘필요한 경우 하도급사가 한다’ 이런 내용을 넣어놓고, 이 부분을 확대 해석해서 추가공사에 버금가는 큰일들을 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이걸 안 해주면 준공검사를 안 해줘요. 또 분쟁을 일으켜봐야 남은 기성 받기도 힘들고 소송비용만 드니까 손해나도 해주는 편이죠”

소장 A “대놓고 투입비용(원가 등 경영정보)을 기성청구 전에 요구하는 원청이 있어요. 이걸로 어떻게든 하도급사 이익분을 깎아내요. 계약한 대로 공사했으면 약속한 공사대금을 줘야 되는 건 기본인데 말이죠. 하도급사는 손해 안 보면 돈 번 거 아니야?라는 인식이 강해요”

소장 B “같은 맥락에서 거래처 정보를 요구한 후 자기들이 거래하는 업체보다 단가가 좋거나 하면 뺏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자재업체나 장비업체들은 하청보다는 원청하고 일하는 게 금액도 크고 일도 많아지니까 우리랑은 거래를 끊어버립니다. 거래처를 뺏긴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전문건설업은 밖에서 보기에는 시공기술로 먹고사는 기술산업이지만 실상은 수많은 계약과 철저한 현장관리로 이뤄진 계약산업이자 관리산업에 가깝다. 계약이나 현장관리를 잘하고 못하는데 따라 분쟁이 나기도 하고, 공사의 흑자와 적자를 가르기도, 궁극적으로 업체의 존폐를 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업무 모두 잘해도 대비가 힘든 원청의 갑질 한방에 손해를 보는 게 하도급사들이라는 게 소장들의 설명이다.

- 분쟁거리가 될 만한 게 끝도 없네요. 갑질을 피하기 힘들다고들 하시지만 여기에 대비하는 각자만의 노하우가 있을 거 같은데요?

소장 C “이것만 하면 갑질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노하우는 딱히 없다는 게 솔직한 대답이에요. 다들 아시겠지만 할 수 있는 게 매일 현장을 사진 등으로 기록하고, 작업일보 꼼꼼하게 작성한 후 원청 소장 서명을 최대한 받고, 추가 작업 등에는 어떻게든 요청서 형식의 자료를 요구하는 등의 정도랄까요”

소장 A “현장팀에 나와 있다가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공무로 옮겨 업무를 이어가는 인원이 꼭 한두 명은 있어요. 현장을 아는 사람이 공무에도 필요하니까요. 이 사람들을 공략합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 사람하고 해결하려고 하고 경험상 문제 해결도 빠릅니다”

소장 B “계약사항 외에 추가공사 등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서면으로 확인 받아 두는 게 중요한데, 우리가 하고 싶다고 되는 건가요. 다만 지시 당시에는 구두로 듣더라도 실제 공사가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문자나 카톡, 메일, 서류 등으로 확인 받으려고 노력하긴 하죠”

소장 D “요즘에는 드론 등 IT 장비를 많이 이용해요. 분쟁시 자료로 쓸 수 있게 물량과 빠져나가는 토사량 등 현장 관련 정보를 드론으로 기록해 둡니다”

업체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갑질에 대비하고 있지만 마음먹고 괴롭히면 이를 피해갈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소장들의 호소였다. 소장들은 하도급사들이 제아무리 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도 상생하려는 문화가 마련되지 않으면 큰 소용없다고 입을 모았다.

- 일하면서 이런 것도 겪어봤다 하는 최악의 갑질이 있을까요?

소장 A “직원을 뺏긴 적이 수차례 있어요. 몇 년간 잘 키워뒀는데 일 잘한다 싶으면 데려가 버리죠. 근데 직원입장에서는 큰 회사가 좋으니까. 더욱이 직원 빼가기 전에 스파이 역할을 시키는 원청도 있어요. 채용을 대가로 지들한테 유리한 일을 시키는 거죠. 당해 보면 진짜 절망을 느낍니다”

소장 C “진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원청이었는데, 자기들 공기 일정이 빡빡하니까 옥상 방수가 마무리도 안 됐는데 정리하라는 거예요. 책임 다 진다고. 버티다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준공 1년 만에 10개 동 중에 3개 동에서 물이 샌 거예요. 하자보수를 우리 보고 떠맡으라고 해서 몇 년간 싸웠어요”

소장 E “우리는 주로 2, 3군 종합건설사들과 일을 많이 하는데 이들의 특징이 있어요. 계약단계에서 보고 법률대응이 취약하다 싶으면 줘야 할 돈도 안 주고 분쟁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제 주변 업체들도 이렇게 당한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에요”

“분쟁 자체가 최악인데 특별한 케이스 꼽는 게 의미가 있나?”라는 게 소장들의 전반적인 입장이었다. 금액이 크든 작든 분쟁 자체가 하도급사, 특히 현장을 책임지는 소장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그들은 강조했다.

- 이 현장은 정말 좋았다 하는 공사경험이 있으신가요?

소장 D “한 지방 부지조성공사 현장이었는데 공사 완료 직후 모든 공사비를 지급해 준 민간업체가 있었는데, 그 현장 끝나고는 정말 신났었어요. 생각해 보면 씁쓸한 일이죠. 정당히 일한 대가를 받은 것일 뿐인데 그런 적이 드물다 보니 좋았나 봐요”

다른 소장들도 하나같이 “다른 거 없어요. 공사비를 이유 안 달고 잘 주는 현장이죠”라는 답을 했다. 공기업이 아닌 민간기업 공사를 해서 제때 돈을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에 이런 뻔한 답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소장들의 이야기다.

- 마지막으로 원청에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소장 B “계약시에 원가 등을 계산해 볼 충분한 시간을 좀 줘야. 급하게 들어가면 서로가 손해니까요”

소장 E “기성만 제때 주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우리는 인건비, 장비비, 재료비 등 모두를 빚내서 선 지급하는데 기성이 늦어지면 피가 바싹바싹 마르거든요”

이들 외에 소장들은 딱히 할 말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대신 “말한다고 바뀌겠어요? 기대 안 해요. 그냥 우리 살길 우리가 찾아아죠”라는 답만 남겼다.

정부가 올해 들어 원·하도급간 상생을 강조하고 관련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소장들의 현실에서는 ‘상생’이란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정부의 정책과 현장의 괴리가 크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때로는 책상에서 만들어지는 수십 개의 대책보다 을들의 한 가지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게 상생으로 가는 더 빠른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을들이 조금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구조가 하루빨리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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