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겠다며 호기롭게 또 꺼내든 분양가 상한제 얘기다. 아파트값을 누르기는커녕 로또청약이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강남불패’ 신화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아 다소 분양가가 비싼 것 아니냐던 강남 아파트 청약 두 곳에 15조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이 두 단지는 분양가가 전 가구 9억원을 넘어 중도금대출이 되지 않는다. 또 한 달 내 전체 금액의 20%에 해당하는 두 차례의 계약금을 자체 마련해 완납해야 한다. 계약금 평균 금액은 3억원 남짓으로, LTV 40%를 제외한 필요 자금은 한 가구당 평균 중도금 6억을 포함한 총 9억원에 달한다. 두 단지 청약에는 하루동안 1만7000명이 몰렸는데 15조원의 가용자금이 대기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청약당첨 뚜껑을 열어보니, ‘르엘신반포센트럴’의 평균 당첨가점은 일제히 70점을 넘어섰다. 특히 모든 타입의 당첨 커트라인이 69점을 기록해 눈길을 끈다. 청약점수 69점이라 함은, 4인 가구(부양 가족 3명)가 무주택기간 15년, 청약통장 가입기간 15년을 모두 채워야 받을 수 있는 최고 점수다. 70점은 돼야 안정권인데, 이는 4인가구가 받기 불가능한 영역이다. “자녀 셋 이상 있거나, 노부모를 모셔야 강남로또 된다”는 푸념이 들리는 이유다.

9억원 넘는 현금을 쥔 청약 최고 가점자들이 여기에 몰린 이유는 시세차익 때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규제를 받은 이 아파트 전용면적 84㎡ 분양가는 14억5000만~16억9000만원 수준으로, 인근 입주 10년차 ‘래미안 퍼스티지’보다 10억원 저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분양가 상한제 발 청약과열 양상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지난 8월12일 분양가 상한제 공식발표 이전과 이후의 서울 청약경쟁률이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8월12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서울 14개 단지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은 70.8대1이었는데, 올해 들어 8월11일까지 서울 32개 단지에서는 17.5대1을 기록했다.

문제는 내년 4월부터 분양가 상한제가 본격 시행되면 더욱 극적인 ‘로또청약’이 한시적으로 쏟아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런 청약시장의 관심이 서울 집값 안정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아파트 잠재 수요자들을 청약 시장으로 끌어와 거래 시장의 수요를 낮춘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청약시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되레 집값 상승 열기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집 사는데 별 생각 없던 사람들까지도 부동산을 기웃거리게 하고, 청약가점의 높은 벽을 절감하면 매매시장에서 추격매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눌러놓은 분양가에 주변 시세가 맞춰지는 게 아니라, 일반분양분 가격이 주변 시세와 같이 급등하면서 투기심리를 자극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현재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하면 더욱 강력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서라도 반드시 잡겠다”고 강조했다. 규제를 덜 해서 집값을 못 잡은 게 아니다. 문제는 되레 규제과잉이다. 종기는 만질수록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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